사람은 위기 앞에서 새 길을 찾기보다 익숙한 길을 먼저 찾는다. 건물에 화재가 나면 자신이 들어온 문으로 나가려 한다. 더 빠르고 안전한 출구가 있어도 그렇다. 일이나 인간관계에 부딪칠 때도 그렇다. 잠을 줄여 성과를 냈거나, 사과보다 침묵으로 갈등을 피했던 사람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 든다. 수전 데이비드는 이것을 ‘감정의 경직성’이라 부른다.

이는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재탐색합니다’라고 안내해도 익숙한 길을 고집하는 운전자와 같다. 더 멀고, 교통 체증이 심한데도 본래 가던 길을 고집하는 것이다. 말 두 마리의 폭과 마차 바퀴 간격은 로마 제국 시대부터 유럽 도로 폭의 기준이 되었다. 이후에도 사람들은 도로를 새로 설계하지 않고 기존 도로에 맞춰 살았다. 유럽에 유독 경차가 많은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를 ‘경로 의존성’ 이라고 한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먼저 사과하면 지는 거야’ ‘사람은 변하지 않아’ 같은 감정의 경직성은 과거의 직관을 당연시하는 습관에서 생긴다. 닫힌 벽만 보며 열린 문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처럼 말이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고 말하며, 그 공간에서 우리는 행동을 선택할 힘을 갖는다고 했다. 그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나는 마음이 유독 불안한 날, 일부러 왼손을 많이 쓴다. 왼손으로 문을 열고 밥을 먹고 양치질을 한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낯선 동작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던 감정적 습관을 깨뜨릴 수 있다. 왼손 설거지가 움직이는 명상이 될 수 있듯 왼손을 쓰는 것 역시 요가가 될 수 있다. 이 작은 변화가 우리의 고정된 반응 패턴을 깨고 더 넓은 시각을 갖게 만든다.

화가 날 때마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던 사람이 산책을 나가거나, 슬플 때 침대에 누워만 있던 사람이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도 방법이다. 몸도 마음도 세상도 끝없이 변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변화에 대한 반응뿐이다. 그 첫걸음은 왼손을 쓰는 것처럼 작고 단순한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