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 한 마리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카프카의 ‘변신’ 첫 문장이다.

지금 나는 1883년 7월 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라하 거리를 걷고 있다. 오늘 이곳에서 ‘현대’ 문학의 교주(敎主) 프란츠 카프카가 태어났다. 카프카가 세계적 브랜드가 되기까지 꾸준히, 그리고 그렇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체코와 독일 문학계와 이스라엘 등 사이에서 서로 카프카에 대한 문학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부조리가 존재하는 까닭은, 유대인인 카프카가 체코가 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람으로서 프라하에서 소수의 고급 독일어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 오로지 독일어로 작품을 썼는데다가, 그의 사후(死後) 그의 작품들이 발굴되는 과정에 얽혀 있는 인물들 사이의 욕심과 트러블 때문이다.

카프카는 어느 국가가 아니라 유럽 ‘프라하(Praha)’의 작가, 독일어권의 작가, 현대인들의 작가로 여겨지는 게 맞다. ‘자본론’ 표지조차 구경 안 했어도 수십억 인간들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처럼, 카프카 소설 안 읽는다고 해서 현대를 ‘앓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한 개인이 자본주의의 기계 조직 안에서 당하는 ‘불가사의한 불행’ 정도는 1915년과 그 앞뒤로 집필된 카프카 문학의 예언적 ‘현대성’의 일부분일 뿐이다.

카프카의 소설들은 ‘플롯의 눈동자’가 없다. 그걸 인과관계, 신, 신비 같은 것들로 ’땜질’하는 게 아니라 블랙홀이 되게 놔두는데, 이게 ‘불안’이다. 이 불안이 카프카 소설 안팎에서 현실로 버젓이 달성돼, 자고 일어났더니 정말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이고, 그게 바로 우리 ‘현대인’이다. 카프카의 블랙홀은 현대의 모든 병적 징후들을 빨아들여 검은 곤죽으로 만든다. 현대성이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선과 악이 한 몸인 이 세상과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미 미쳐버린 ‘인간’들끼리 어찌할 것인가에 관한 우울이다. 카프카를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지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 못한 채 죽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