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가 말했다. ‘화장실이 있는 한 신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은 이제 신문 대신 스마트폰을 들고 화장실에 간다. 시간이 길든 짧든 문자라도 보내고, 인스타그램을 열어 스토리라도 하나 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화장실에 잡지를 쌓아 두고 한두 페이지 넘기곤 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을 들고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히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넘기다 한 인스타친구의 스토리에서 시선이 멈췄다.
“오랜만에 한 장 한 장 신문을 넘기다 보니 유튜브 디톡스가 되는 느낌….”
이 한 문장을 읽고 문득 멈칫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워낙 활발한 마케터였기에 더욱이 의아했다. 그런 그가 도대체 어떤 면에서 신문 읽기를 ‘디톡스’처럼 느꼈을까?
요즘엔 주변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유형일지도 모르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도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보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그나마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가 말한 ‘디톡스’ 말을 곱씹어 보았다.
스마트폰 속 콘텐츠는 끊임없이 내 주의를 빼앗는 반면, 신문이나 잡지는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더 이상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인스타그램 초창기만 하더라도 그곳에서 얻는 정보는 멋진 공간, 맛집, 여행지 등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주요 언론사나 개인 미디어까지 가세하여 사회 전반의 뉴스를 쏟아낸다. 그뿐인가. 돋보기 탭과 같은 기능으로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제공해 스크롤에는 끝이 없다. 자기 전에 누워서 보는 릴스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똑똑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법을 일로 연구하는데 개인이 어떻게 당하겠는가.
게다가 스마트폰을 들고 단순히 한 앱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SNS를 보던 중 메시지가 오면 답장을 하고, 음악 곡을 넘기고, 링크된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키워드 검색을 하는 식으로, 화면 위에서는 늘 여러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계속해서 할 일이 있다는 착각을 하고, 끝없이 주의가 분산된다.
바로 여기서 스마트폰과 종이 신문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종이 신문의 콘텐츠에는 적어도 끝이 있다. 신문이나 잡지를 펼칠 때는 정한 분량, 정한 페이지가 있고, 그 페이지가 끝나면 더 이상 나의 주의가 필요하지 않다. ‘끝이 있다’는 생각 하나만으로도 묘하게 집중력이 높아진다.
가령 신문을 처음 펼쳤을 땐 읽을거리가 풍성하다는 생각에 다소 헤프게 읽는다. 헤드라인과 부제를 위주로 보며 시원시원하게 페이지를 넘기는 식이다.
하지만 국제면쯤 이르면 눈이 본문에 머물고, 칼럼을 지나 사설에 닿으면 어느새 콘텐츠의 끝이 가까워졌음을 의식하며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히 음미하는 기염을 토한다.
어쩌면 우리가 종이 신문을 펼치는 이유는 정보 때문만이 아니라 ‘끝’을 만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페이지의 끝, 기사의 끝을 만나고 난 뒤 오는 그 잠시의 휴식과 여백, 그 여백이야말로 친구가 얘기한 ‘디톡스’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