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 유명한 SF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에서 주인공 릭 데카드는 안드로이드(인간의 모습인 AI 로봇)를 쫓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일터에서 도주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안드로이드를 잡아 그들에게 걸려 있는 돈을 버는 것이다. 다만 고도로 발달한 안드로이드 모델일수록 육안으로는 인간과 구분이 어렵기 때문에, 데카드 같은 사냥꾼들은 용의자를 잡아두고 그가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감정이입 검사’를 시행한다. 바로 ‘보이트-캠프(Voight-Kampff) 검사’다.
보이트-캠프 검사는 검사 대상자의 왼쪽 눈에 흰색 광선을 비추고, 뺨에 철망으로 된 원판을 부착한 채 일련의 문장들을 읽는 것으로 이뤄진다. 문장은 몹시 낯설고 예외적인 사회적 상황을 묘사하고, 장비들은 그에 따른 안구와 모세관 팽창 반응을 측정한다. ‘당신은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손목 위에 말벌 한 마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합니다.’ ‘당신은 옛날 영화를 보다가 연회에서 손님들이 생굴을 맛보는 장면을 봅니다. 그런데 주요리는 속에 쌀을 넣고 푹 삶은 개고기였습니다.’ 이때의 반응에 따라 데카드는 피검사자가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 판별한다. 그리고 안드로이드로 판명되면 사냥꾼은 상대를 죽일 수 있는데, 이것은 살인이 아니라 ‘퇴역’으로 명명된다. 진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오늘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보이트-캠프 검사를 시도하는 사냥꾼이 되기 쉽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 인간이며, 누구도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판별하여 퇴역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정치적, 문화적, 감정적 성향은 우리 자신의 일부일 뿐이다. 한 가지 더. 영화에서 데카드의 정체는 끝까지 불분명하게 그려지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기 자신을 검사해 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