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절연했다. 친구가 하나 사라졌다. 페이스북 친구다. 페이스북 친구가 친구냐고? 친구는 친구다. 페이스북은 서로 글을 보려면 ‘친구’를 맺어야 한다. 앱에도 친구라 적혀 있다. 친구 없던 마크 저커버그가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만든 소셜미디어라 그럴 것이다.
나는 페이스북 친구가 4248명이다. 어제는 4249명이었다. 친구 요청을 보낸 사람은 912명이다. 내가 이름을 클릭하기 전에는 그들은 다만 한 바이트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클릭하면 그들은 나에게 와서 꽃이 될 것이다. 어떤 꽃이 될지는 모른다.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지는 않아서 속단은 무리다.
사라진 친구가 누군지는 모르겠다. 이유는 알겠다. 정치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 페이스북은 절연으로 넘친다. 10년 친구도 절연한다. 정치 이야기 때문이다. 정치가 극단으로 흐르면 모두가 묻기 시작한다. 만화 ‘20세기 소년’ 교인처럼 묻는다. “너는 친구인가?”
올해 보건사회연구원 설문 조사에는 징후가 있다. 정치 성향 다른 사람과 연애할 의향도 없다는 대답이 58.2%다. 술자리 같이할 의향도 없다는 대답은 33.0%다. 우리는 어느 순간 친구도 나누기 시작했다. 좌우로 나눈다. 그 안에서도 나눈다. 좌에서 얼마나 좌냐. 우에서 얼마나 우냐. 나는 이걸 쓰며 우냐.
나는 더는 친구를 좌우로 나누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나누는 새 조건이 생겼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볼 때 치타와 톰슨가젤을 응원하는 사람이다. 누구는 톰슨가젤을 응원한다. 쫓기는 자의 고단함에 감응한다. 누구는 치타를 응원한다. 자식들 먹이려 쫓는 자의 고단함에 감응한다. 응원 대상이 항상 같지도 않다. 같은 사람도 어떤 날은 치타를 응원한다. 어떤 날은 톰슨가젤을 응원한다.
친구를 이렇게 나누니 더는 절연할 필요가 없다. 나누는 경계가 흐려지면 나누는 의미도 사라진다. 만약 당신이 치타와 톰슨가젤을 카메라로 쫓는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응원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삶의 고단함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너 내 동료, 아니 친구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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