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대통령을 ‘최고통수권자’로 칭할 때가 있다. 일국의 군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이라는 뜻이다. 국가원수의 대권으로 통하는 만큼 대통령을 제외한 여타 군 지휘관에게는 ‘통수’ 또는 ‘통수권’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현행 헌법 조문을 포함해 한국어 언중(言衆)이 통수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일제의 유산으로 볼 수 있다. 대일본제국 헌법 제11조는 ‘천황은 육해군을 통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때까지 통수는 특별한 말이 아니었다. 사령(司令) 또는 지휘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 천황과 결부되어 조문화되자, 천황 전속 대권이라는 의미로 격상되고 신성불가침성이 부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통수권은 그러한 배경하에서 생겨난 말이다.

당시 통수권이라는 말이 갖는 힘은 소위 ‘통수권 간범 문제’에서 그 사정을 살펴볼 수 있다. 1930년 하마구치 내각은 해군 군령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런던군축조약 조인을 강행한다. 이때 군부 강경파와 우익 세력이 정부를 공격하면서 만들어낸 말이 ‘통수권 간범(干犯)’이다. 신성한 통수권을 간섭하고 침해한 불경죄라는 것이다. 그해 11월 하마구치 수상이 우익 청년에게 저격당하는 암살 미수 사건이 벌어질 정도로 통수권 프레임의 효과는 강력했다.

군인들에게 최고통수권이라는 말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위국헌신의 군인 본분을 구체화하는 것이 최고통수권자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지금 한국 법정에서는 계엄 발령을 둘러싸고 최고통수권자와 휘하 군인들 사이에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최고통수권자의 결단’임을 내세우는 쪽이 제약된 정보와 현장의 혼란 속에서 명령을 수행한 군인들에게 날을 세우며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비극적이다. 자신의 명령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군의 명예와 사기를 존중하는 것은 최고통수권자의 최소한의 자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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