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 세 개를 굴려 눈사람을 만들고 ‘조각품’이라고 전시하면 고개를 갸웃할 일이다. 하지만 그 눈사람이 야외 조각 공원에서 사시사철을 모두 겪으며 1년 내내 서 있다면 다른 얘기가 된다.
스위스 출신의 미술가 듀오 피터 피슐리(Peter Fischli·1952~)과 데이비드 와이스(David Weiss·1946~2012)는 1978년 처음 만나 록밴드를 결성했다. 이후 점차 사진과 영상으로 작업 반경을 넓히면서 와이스가 세상을 뜰 때까지 협업을 이어갔는데, 무엇을 하든 그들 작품에는 위트와 유머가 넘쳤다. 1987년 독일 자르브뤼켄의 화력발전소에서 발전소 앞에 세워 둘 조각을 의뢰받았을 때 그들은 ‘녹지 않는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듣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지는 화력발전소와 한겨울의 눈사람이라니 기상천외한 조합 같지만, 사실 눈사람을 지켜주는 건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력이었다. 피슐리와 와이스는 냉장고 안에 구리로 만든 둥근 뼈대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냉각 팬을 돌려 구리 표면에 서리가 맺히게 해서 눈사람 모양을 만들어 냈다. 냉장 장치는 물론 발전소에서 나오는 잉여 전력으로 유지했다. 문제는 얼굴이었다. 몸통은 자동으로 형성되지만, 눈과 입은 매일 한 번씩 사람이 그려줘야 했다.
2016년, 재제작했을 때는 냉각 기술도 발전해서 가정용 에어컨에 쓰는 소형 압축기 하나로 눈사람의 형성 및 유지가 가능했고 따라서 비용도 줄었다. 30년 만에 되돌아온 눈사람을 보며 사람들은 기후 위기와 발전소의 폐해를 지적하기도 했지만, 피슐리는 이처럼 단순한 비판보다는 전기가 없으면 눈사람도 없는 모순적 현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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