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을 걷는다. 짤막한 데다 오가는 이도 드문데 중간쯤 경찰이 서 있다. 아, 바로 뒤가 미국 대사 관저(官邸)렷다. 혹시 그래서 여기 근무하느냐 물으니 그런저런 까닭인 듯하다나. 가까이 영국 대사관도 있고, 예나 지금이나 외국하고 인연이 깊은 곳이구나. 허옇게 일부만 남은 러시아 공사관이 저기서 내려다본다. 일본에 위협을 느낀 고종 임금이 그리로 거처를 옮기느라 여기를 지났다지. 아관파천(1896) 때 말이다.

구한말에 러시아를 일컫던 중국식 이름 ‘아라사’의 ‘아’ 자에 ‘집 관’ 자를 붙인 ‘아관(俄館)’은 러시아 공사관. ‘파천(播遷)’은 수도를 옮긴다는 뜻의 ‘천도’에서 짐작하듯, 임금이 도성을 떠나 피란하던 일을 가리킨다. 이런 식의 설명이 있다면 역사 배우기가 한결 수월하고 재미나지 않을까. 어려운 한자어가 숱하게 나오는 고교 역사 시간은 참 막막하고 낯설었다.

천주교 신자 황사영이 신유박해(辛酉迫害)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고자 북경의 주교한테 글을 보내려 한 ‘백서 사건’(1801)은 또 어떤가. 비단에 쓴 것이라 ‘비단 백(帛), 글 서(書)’라 함은 훗날 알았다. 1866년 프랑스, 1871년 미국 군대가 쳐들어왔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서양이라 할 때 ‘양(洋)’에 ‘소요’ ‘요란’의 ‘요(擾)’를 썼으니 ‘서양인들이 일으킨 난리’인 줄 처음 배울 때는 귀에 쏙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 배 모습이 당시는 특이한지라 ‘이양선(異樣船)’이라 했음을 그나마 어렴풋이 짐작했던가.

안 그래도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이 한창인 판에 이런 서양 오랑캐랑 가까이 지내고 싶었으랴. 흥선 대원군이 화친(和親)을 배척(排斥)한다는 뜻으로 곳곳에 세운 비석을 그래서 ‘척화비(斥和碑)’라 한다. ‘위정척사’의 바로 그 ‘척’을 써서….

어떤 과목이든 쓸모 많은 한자를 이런 식으로라도 가르치면 좋겠다. 일본에 보내던 외교 사절 ‘통신사(通信使)’를 두고, 그 시절에도 통신사(社)가 있었느냐 하지 말란 법 없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