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반에 계룡산에 가면 봉우(鳳宇) 선생이 계셨다. 허연 수염을 기르고 계신 모습은 책 속에 나오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였다. 나는 호흡 수련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국운의 방향과 미래의 문명 전환에 대한 말씀이 더 와닿았다. ‘황백전환기(黃白轉換期)’라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백인들이 문명을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황인종이 주도권을 쥔다는 거대 담론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짱돌 들고 데모하면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탐독할 때 나는 계룡산파의 허무맹랑한 예언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황인종이 백인을 제치고 칼자루를 쥔다는 말인가? 예언에 대한 신앙심이 있었던 필자였지만 ‘황백전환’ 이야기는 맨 정신으로는 납득이 안 되었다. 선생님이 그냥 하시는 이야기이구나! 그러나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도체 전쟁(chip war)을 보면서 그 예언이 맞아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반도체가 스마트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의 핵심 기술이 되었고, 인공지능이 앞으로의 문명 판도를 바꾼다는 것 아닌가. 반도체 패권을 쥐기 위해 5국이 전쟁을 하고 있다. 미·중과 나머지 세 나라는 한국, 대만, 일본이다. 유럽에는 이렇다 할 반도체가 없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4국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황인종인 데다가 한자를 써서 소통하는 필담(筆談)이 가능한 나라이다. 백인들은 전문가가 아니고는 한자로 소통하는 필담의 경지까지 진입하기가 매우 어렵다. 공교롭게도 한국, 대만, 일본은 미국의 영향권하에 있다.

장기판에 비유해 보자. 한국은 미국의 차(車)이고, 대만은 포(包)이고, 일본은 마(馬)쯤 될까. 반도체 장기판에서 한국과 대만은 미국의 차와 포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에 반도체 공장을 새로 짓기 시작했으니까 차와 포보다는 역할이 떨어지는 마(馬)에 해당한다. 미국은 차, 포, 마를 앞세워서 중국을 몰아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한자 문화권에서 보자면 중국과 한국, 대만, 일본은 더 가깝지만 치고받는 전쟁에서 보자면 아시아 세 나라는 미국의 편이다. 중국은 차, 포 떼고 장기 두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공격에 졸(卒)만 가지고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이 대목에서 드는 생각이 중국은 왜 지난 사드(THAAD) 사태 때 한국을 그처럼 핍박하고 업신여겼는가이다. 그동안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한국의 식자층이 이때 반중(反中)으로 돌아섰다. 중국이 장기판을 좀 넓게 보는 안목이 부족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