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서울대 캠퍼스가 위치한 관악산 기슭에 수의대 동물병원이 있다. 로비에 들어서면 카페 같은 공간에 노란 빛 수액을 맞고 있는 동물 환자와 이를 안고 있는 보호자 모습이 보인다. 환자 반려견, 반려묘는 대개 아기 유모차에 태워져 온다. 보호자에는 70대 할아버지도 있고, 대형견에게 끌려다니는 20대 여성도 있다.

내과 진료실 앞 모니터에는 또리, 풍이, 라온 등 대기 환자 이름이 줄줄이 뜬다. 뽀미는 호출 소리에 보호자와 진료실로 들어간다. 개와 고양이는 사이가 안 좋은 견묘지간(犬猫之間)이라, 둘의 진료실은 분리되어 있다.

정형외과 처치실로 들어가면, 환자 한 마리에 수의사 3명이 달라붙어 있다. 혈압계를 앞다리에 감아서 혈류를 감지하는 도플러로 혈압을 잰다. 환자와 말이 안 통하니, 만지고, 눌러보고, 돌려 보느라 진찰 시간이 길다. 이곳에 3분 진료는 없다. 보호자들은 환자 이상 행동, 분변, 먹고 토한 것까지 동영상으로 찍어 온다.

입원실은 작은 컨테이너 박스 같은 구조다. 그 안에 산소 가스, 흡입기 등 각종 의료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동물은 처음 보는 남과 같이 못 지내기에 모두 1동물실이다. 이를 보자니, 생판 처음 보는 환자들과 4인실에서 섞여 지내는 사람들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MRI 검사실에는 뇌종양 반려견이 누워 있고, 신장 기능이 떨어지는 반려견은 투석실로 간다. 빈혈인 환자는 혈액원에서 사온 같은 품종의 같은 혈액형 피로 수혈을 받는다. 심장 초음파와 흉부 CT를 포함한 반려묘 건강검진 골드 프로그램은 190만원이다.

동물병원 중에는 심장병, 안과, 암 치료 전문병원이 성업 중이고, CT와 MRI를 찍고 판독해주는 영상의학과 의원도 영업 중이다. 인공 관절, 담낭 절제술, 백내장, 디스크 수술 등 인간 세상에서 하는 모든 의료가 동물에게도 적용된다. 중국서 오는 원정 환자도 있고, 수백만원 하는 줄기세포 시술도 이뤄진다. 다만 뇌사 제도가 없기에 장기이식이 없고, 국민건강보험도 없다.

수의학이 인간 의학보다 앞서가는 분야도 있다. 국내 제약회사 지엔티파마가 개발한 반려견용 인지기능장애증후군(CDS) 치료제 ‘제다큐어’는 국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동물계도 고령사회가 되면서 인지장애 환자가 크게 늘었다. 이 약은 잘 알아듣던 간단한 명령어를 어느 날부터 인지 못하는 노령견을 다시 똑똑하게 만들고 있다. 한 자리서 뱅뱅 도는 서클링 증세도 줄인다. 세계 유일이다 보니, 소문을 접한 미국 보호자들이 “제다큐어를 제발 보내달라”는 요청을 보내온다. 치매 가족에게 먹이려고 반려견이 인지장애인 척하고 약 처방을 받아가는 사람들도 있단다. 주인 약도 구해주는, 이런 효녀 효자 개가 없다.

동물용 아토피 치료제가 반려견에게 크게 효과를 내고, 같은 원리의 약물이 사람 임상시험에 쓰이자, 수의학 피부과 교수가 사람 피부과 학회에 가서 동물에게 쓴 경험을 강의하기도 한다. 강아지 울혈성 심부전에 쓰이는 심장약도 일부 국가에서 사람에게 투여되고 있다. 기존에는 사람 약을 동물에게 썼는데, 이제는 동물 약이 사람 약으로 쓰이는 경우가 등장하는 것이다.

서울대 동물병원에는 애도실이 있다. 이곳에서 죽음을 맞거나 안락사한 동물을 하늘로 보내는 공간이다. 염을 한 상태로 온 가족이 모여 추모의 시간을 가진다. 안락사 대상은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환자다. 동물은 다출산이라 유선이 많아, 유방암과 같은 염증성 유선 종양이 많다. 통증은 심한데 병세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의료진과 보호자가 합의해서 안락사를 치른다. 강력한 진통 진정 효과를 내는 T-61 주사제가 안락사용으로 개발되어 있다. 인간계의 논쟁 사안이 동물계에서 미리 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점점 사람과 동물 영역이 합쳐지고 있다. 비만한 보호자는 반려견도 뚱뚱하다. 지방질을 즐겨 찾은 주인 탓에 개도 지방을 많이 먹어 췌장염으로 고생하기도 한다. 수의계에서도 항생제가 남용되어, 반려견의 항생제 내성균 감염이 심각하다. 그 내성균은 사람에게 넘어오고, 인간 것은 동물에게로 간다.

이제 ‘원 헬스(One Health)’다. 인간, 동물, 환경의 건강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상호 의존한다는 개념이다. 건강과 생명에 대한 인식을 우리 사는 생태계 전체로 넓혀가야 모두 건강해지는 세상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