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초반 일본에는 ‘21세기 베토벤’ 열풍이 분 적 있었다. 사무라고우치 마모루(佐村河内守)라는 남성이 그 주인공으로, 젊은 시절 청력에 문제가 생겨 나중에는 거의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타고난 절대음감으로 게임, 드라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에서 명곡을 작곡했다는 휴먼 스토리가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다.

피폭자 2세로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는 배경도 그에 대한 신비함과 호감을 더했다. 그가 작곡한 교향곡은 ‘히로시마’로 명명되었고, 클래식으로는 이례적인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사회가 실의에 빠져있을 때 그가 피아노 소나타 진혼곡을 작곡하는 과정이 공영방송 특별 기획으로 편성될 정도로 그는 역경에 굴하지 않는 의지의 상징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사무라고우치의 명성이 절정을 달리던 2013년 2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그의 곡들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 대작(代作)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추궁이 계속되자 그는 결국 의혹이 사실임을 실토하였고, 곧이어 정체를 드러낸 고스트 라이터는 무려 18년 동안 곡을 대신 써주었으며 그의 청각 장애도 거짓이었다고 밝혀 충격을 더했다. 사죄 기자회견 후 사무라고우치가 종적을 감추자 ‘들을 수 없기에 더욱 음악에 진심을 담을 수 있었다’던 그의 호소에 감동했던 사람들은 파렴치한 사기극에 허탈감과 분노를 느껴야만 했다.

절박함을 호소하는 빈자(貧者) 코스프레로 동정을 모으며 인기를 누린 국회의원이 회기 중에 수십억 원대의 코인 거래에 몰두하였다는 사실을 접하는 한국인들의 심정도 사무라고우치에게 느낀 일본인들의 당혹감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본연(本然)이 아닌 가공의 모습으로 영달을 꾀하는 것이야 어디에나 있는 일이지만, 도덕성을 상실한 공적 인물을 국민이 제대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유사한 일은 언제라도 재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