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일, 여러 나라가 치열한 유치에 나섰던 테슬라의 기가팩토리(Gigafactory)가 멕시코로 정해졌다. 기가 네바다, 기가 뉴욕, 기가 상하이, 기가 베를린, 기가 텍사스에 이어 여섯 번째 공장이다. 많은 국가들이 기가팩토리를 원한 것은 단순한 생산 기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10만 대를 겨우 생산하던 테슬라는 2022년 131만 대를 판매하면서 불과 5년 만에 10배 이상 성장했다. 게다가 작년 판매량 684만 대로 세계 3위에 올라선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이 17조원인데, 테슬라는 136억5600만달러(한화로 약 17조8000억원)로 현대차를 앞선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의 대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기가팩토리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핵심인 스마트공장(smart factory)의 현재는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노동력 부족으로 해외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던 독일은 제조업 부활을 위해 디지털 기술을 생산 현장에 광범위하게 도입한다. 이를 ‘인더스트리 4.0′이라고 하고, 2016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붙였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은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오해도 많지만, 독일의 혁신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를 바라보면 다소 명확해질 수 있다. 우선 스마트공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되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영화 ‘모던타임스(1936년)’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아마도 컨베이어 벨트일 것이다. 쭉 늘어선 노동자들이 벨트에 맞춰 조립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한 공장제 생산 방식이다. 자동차왕 포드가 만든 시스템이라 ‘포디즘’이라 부르는 이 대량 생산 공정은 자동차의 가격 하락을 이끌어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를 노동자도 소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듯이 더 많은 생산을 위해 기업가들은 계속 벨트의 속도를 올렸고, 인간의 노동은 기계 벨트에 작업 속도를 맞춰야 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기업으로서도 이런 시스템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전통적인 컨베이어벨트는 모든 공정이 ‘인-라인(in-line)’으로 연결되어 있다.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 같지만, 하나만 문제가 생겨도 라인 전체가 멈춘다. 비슷한 예로는 철도가 있다. 단 하나의 지점에서 이상이 발생해도 철도망 전체에 영향을 주므로, 여러 국가가 복잡하게 연결된 유럽에서 철도는 정시에 도착하기 힘든 교통수단이 되고 있다. 게다가 획일화된 공정은 다품종에 취약해,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와 거리가 멀다. 자동차에 여러 옵션과 외관, 도색 등을 다르게 생산하려면, 컨베이어 시스템은 무력하다.

이처럼 물리적으로 하나의 라인으로 연결된 공정을 끊어내고 분리하는 것, 그리고 이렇게 분산된 생산 공정을 사물인터넷(IoT)으로 연결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디지털 트윈으로 재현해서 관리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다. 이전에도 포디즘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1960~70년대 ‘포스트 포디즘’은 ‘도요타 생산 방식(TPS)’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탄생한 도요타 시스템은 지난 50여 년간 전 세계 제조업의 표본이었지만 테슬라의 기가팩토리가 이를 앞서고 있다. 최근 도요타가 변화를 위해 경영진을 교체하고 테슬라 차량을 분석하면서 획기적인 공정 혁신이라며 놀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가팩토리를 대표하는 공정은 ‘기가프레스(Gigapress)’라고 불리는 초대형 주조 공법이다. 자동차의 차체는 많은 부품이 용접 등으로 이어지는데, 기가프레스는 알루미늄을 녹여 단 하나의 부품으로 찍어낸다. 부품이 줄면 공정이 줄고, 공정이 줄면 불량이 적어지고 생산성이 올라간다. 이렇게 단순화된 차체는 AGV(automatic guided vehicle)로 불리는 무인 운반차에 실려 조립된다.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면 라인 전체가 멈추지만, AGV는 그 차량만 빠지면 된다. 생산의 유연화가 가능해진다. 컨베이어 벨트는 사라졌고, 생산은 분산되어 위험을 줄였으며, 이렇게 물리적으로 분산되어 끊어진 제조 설비는 무선 통신으로 연결되었다.

이렇게 생산 공정을 구성하는 것을 스마트공장이라고 한다. 요컨대 스마트공장은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다. 로봇에 과도한 의존은 오히려 실패 사례가 되기도 한다. 아디다스의 로봇 신발 공장 스피드팩토리는 3년간의 실험 끝에 2019년 폐쇄하기로 했다. 테슬라 역시 2018년 전면 자동화를 도입했다가 사전 주문 물량을 소화하지 못해 파산 위험에 빠지기도 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고도의 디지털 기술이 결합한 전혀 새로운 차원의 제조 혁신에 대한 철학이 필요했다. 이런 고민 끝에 탄생한 기가팩토리는 개선을 거듭하며 생산성 1위의 공장이 되었다.

이미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도 스마트공장에 나서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용어를 만든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스마트 혁신을 이룬 산업장을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지난 2019년에는 포스코가, 2021년에는 LS일렉트릭이, 2022년에는 LG 창원 공장이, 2023년에는 LG 테네시 공장이 선정되었다. 하지만 아직 중소기업들은 엄두를 못 내는 실정이다. 노동 인력 감소가 눈앞에 닥친 현실에서 같은 고민을 겪었던 선진국들의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에서 도금은 외국인 노동자들로 근근이 버텨가지만, 일본의 도금 가격이 한국보다 훨씬 싸다. 주조나 단조조차 중국보다 독일의 생산성이 앞서기도 한다. 인건비로만 따지기 힘든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제조 환경의 지능화는 우리 산업에 많은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