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적이었다. 지난 금요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국교 복원에 합의했다. 2016년 단교 후 7년 만의 화해다. 두 달 안에 대사관을 다시 열기로 했다. 1998년 양국이 맺은 경제 협력 협정과 2001년 안보 협력 협정을 다시 활성화할 예정이다. 합의의 핵심은 상호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이다. 사우디를 위협해 온 후티 반군이나 헤즈볼라 등 중동 내 친(親)이란 집단을 이란이 억제함을 의미한다. 반대급부로 사우디의 이란 경제 지원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제재에 따른 경제난을 겪는 이란은 정치적 야심을 양보하고 급한 불을 끄는 셈이다. 양국의 화해는 중동 최대 지정학적 갈등을 해소하는 단초다. 유엔을 비롯한 주요국의 평가도 대부분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두 국가만의 사안이 아니다. 중동을 무대로 하는 미중 경쟁의 첨예한 주제였다.

일단 실질적 승자는 중국이다. 중국의 중재로 베이징에서 합의가 타결되었기 때문이다. 공동성명 자리에서 왕이 전 외교부장은 사우디와 이란 대표 사이에 섰다. 이 자리에서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원칙을 거듭 강조했다. 익숙한 표현이다. 신장 위구르 문제와 홍콩 민주화 탄압으로 미국의 고강도 압박을 받을 때마다 중국이 항변한 말이다. 작년 4월 보아오포럼에서 시진핑이 발표한 글로벌 안보 구상의 요체이기도 하다. 타이밍은 더 기막히다.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 딱 맞췄다. 합의 시점, 장소, 내용 모두 시진핑 지도부의 외교력 과시에 활용된 셈이다.

시진핑은 최근 중동에 부쩍 공을 들였다. 작년 12월 사우디를 방문, 걸프 국가들과 적극 협력을 다짐했다. 그해 여름 바이든 대통령 사우디 방문 때 불거졌던 마찰과 대비되는 행보였다. 지난달에는 국내외 정세로 다급해진 이란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다. 상황은 급진전했다. 중국은 이란을 압박하고 사우디를 설득하여 양국 관계 정상화 합의를 타결시킨 것으로 보인다.

일러스트=백형선

경제적 실리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중국의 중동 석유 의존도는 여전히 높다. 걸프 해역(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은 중국으로서는 에너지 안보의 사활이 걸린 요충지다. 사우디와 이란을 함께 품게 되면 자원 생산과 공급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지지부진한 일대일로 구상에도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전략적 옵션이 늘어난 셈이다.

미국은 타격을 입었다. 워싱턴의 반응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타난다. 백악관 관계자는 외교를 통한 합의라는 점은 환영하면서도 이란의 반칙 가능성을 완곡하게 언급했다. 미국 싱크탱크의 전략가 다수는 미국의 텃밭이었던 걸프 지역, 특히 우방 사우디의 급격한 중국 경사(傾斜)에 놀라고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관여하기를 축소하자, 그 힘의 공백을 중국과 러시아가 무서운 속도로 채우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전략 중점을 동아시아로 옮기는 인도-태평양 전략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을 염려한다. 동아시아를 막으니 서아시아가 뚫리는 형국이랄까? 미국의 뒤 공간을 중국이 잡아채는 셈이다.

본래 미국은 중동의 역외 균형자를 자처했다. 물리적 직접 개입은 줄이지만 외교를 통해 영향력은 유지하려는 전략이었다. 이 맥락에서 지역 강국 사우디, 이란, 튀르키예 간 세력 균형을 추진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중동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미국은 사우디를 친미 진영에 굳건히 안착시키고, 튀르키예는 나토에서 관리하고, 이란을 중립 지대로 끌어오는 목표였다. 바이든 정부가 이란 핵 합의 재협상에 나선 배경이다. 하지만 이란 핵 협상이 교착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미국은 방향을 바꾸었다. 아브라함 협정을 토대로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중동 우방국들을 반(反)이란 연대로 결집하는 포석이었다. 금번 베이징 합의는 미국의 애초 계획을 고스란히 뒤집어놓은 셈이다. 사우디를 끌어안지 못한 타격이 컸다. 중국은 이란을 견고한 친중 진영에 묶어두고, 사우디를 중립 지대로 끌어다 놓았다. 적어도 여기까지 전략 싸움에서 미국은 중국에 밀리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 합의는 분명 시진핑의 정치적 이익에 일조했다. 그러나 사우디가 중국에 편승, 미국과 절연하리라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사우디가 미·중 사이에서 양면 게임을 벌이는 모양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인 비전 2030에 매진하고 있다. 내외 정세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후티 반군의 공습 등 이란발 불안정성이 높아지자 아예 이란과 직접 협상하기를 택했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는 중국을 중재자로 활용하며 베이징을 한껏 띄웠다. 미국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 문제 등을 제기하며 사우디를 압박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면서도 최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는 또 다른 신호를 보냈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과 수교할 테니 대신 농축 기술 등 민간 핵 개발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베이징 합의와 비슷한 시점이다. 미국으로서는 받기 힘든 요구다. 하지만 사우디의 친중 행보를 막을 다른 유인책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사우디판 탈(脫)진영 외교의 의지를 드러낸다.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을 압도하며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미국을 누른 것이 아니다. 어쩌면 미국을 더 끌어당기려는 사우디의 게임일 수도 있다.

어떻든 중국은 중동에서 거둔 외교 성과에 고무된 분위기다. 그러나 중국이 역외 균형자로 중동에서 미국을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도 시리아, 예멘, 리비아 내전과, 이란 핵 문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IS 등 테러리즘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팔 걷어붙이고 이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역량과 의지가 중국에 있을까? 어설프게 발을 디뎠다가 오히려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중동에 적극 개입하다가 초강대국 미국조차 국제 정치 리더십의 손상을 입지 않았던가?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은 중동에 관여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이겨도 이긴 게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