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기다린다. 저 멀리서 들리는 꽃 소식 말고, 마른 가지를 거짓말처럼 뒤덮어서 어느 날 문득 마음을 콩콩 두드리며 눈부신 아침을 만들어 줄 꽃을 기다린다. 곧 지고 말 잠깐의 찬란한 시간을 기다린다. 초록보다 오래지 않아서 더 애틋할 설렘을 기다린다. 꽃이 아니라면 무엇이 시절을 그토록 빛나게 할 수 있을까.

구성수(1970~)는 ‘포토제닉 드로잉(Photogenic drawing)’ 연작에서 꽃을 소재로 삼아서, 성실하면서도 다재다능한 작가적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냈다. 사진이 지닌 매체적 특성과 쉼 없이 변모하는 생명력에 대한 탐구가 이 작업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꽃은 최종적으로 종이에 잉크로 프린트되어 사진처럼 보이지만, 가장 사진적이면서도 사진이 아닌 과정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구성수, 포토제닉 드로잉, 흰색으아리, 2011.

작가는 빛에 닿으면 굳는 감광물질을 이용해서 음화(negative image)를 만들고 다시 그것을 반전시켜서 양화(positive image)를 만들었던 전통적인 사진 프로세스에 착안해서, 찰흙판에 꽃과 줄기를 포함한 식물을 누른 후 석고를 부어 부조를 만들었다. 그 위에 사실적인 꽃 그림을 그리고 나서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서 세밀하게 사진을 찍었다.

작품 속의 꽃은 실물로 형태를 잡고 손으로 색을 입힌 것이다.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가 얻은 것은 사진적으로 창조되어 시들지 않는 꽃이다. 종이로 만들었을까, 손으로 이어붙였을까, 설명을 듣고도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구성수의 꽃이 있다. 복잡한 과정의 수고로움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

‘꽃 사진 찍는 나이’라는 농담이 있다. 더 이상 꽃다운 나이가 아닌 사람들이 꽃 귀한 줄 알게 되어 애꿎게 사진만 찍는다는 얘기인데, 나는 꽃 좋아해서 꽃 찍는 나이인 내가 맘에 든다. 꽃의 얼굴은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사람처럼 그렇다. 이 세상에 만 갈래의 사람 마음이 있다면, 꽃을 좋아하는 마음도 만 가지일 게다. 그걸 깨닫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부딪히고 깨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