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3월 1일 중국 상하이 징안쓰루(靜安寺路) 올림픽대극장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최로 제1회 삼일절 기념식이 열렸다. 일본영사관의 간섭으로 점차 그 규모가 작아지긴 했지만 일제강점기 내내 삼일절은 상하이 교민들에게 크리스마스나 설날보다도 기쁜 날이었다.
당시 기념식의 사진들과 관련자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삼일절 행사의 전반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독립만세’라 적힌 휘장이 무대 위 벽면에 드리워져 있고 그 양옆으로 커다란 태극기가 꽂혀 있었으며 천장에는 만국기가 팔락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삼일절 노래를 불렀고, 안창호와 조소앙 등 독립지사들도 연설로 삼일절을 경축하고 독립의 의지를 다졌다. 기념식 당일 밤에는 매번 ‘경축연예대회(慶祝演藝大會)’가 열려 암울한 시절의 우리 교민들을 잠시나마 웃게 해주었다. 그 대회는 상하이 교민들의 초등교육 기관인 인성학교(仁成學校)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율동과 합창, 연극 등으로 꾸려졌다.
기억하는 사람에 따라 삼일절 기념식에서 부른 ‘삼일절가’의 노랫말은 조금씩 다르다. 1923년부터 매년 상하이의 삼일절 기념식에 참석했다고 하는 김명수가 기억하는 ‘삼일절가’는 다음과 같다. “참 기쁘구나 삼월 하루 독립의 빛이 비쳤구나/ 금수강산이 새로웠고 이천만 동포가 기뻐한다/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우리나라 우리 동포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대한의 독립이 만만세라”라는 노랫말인데, 곡조는 로버트 로리(Robert Lowry)가 1864년에 작곡한 찬송가 ‘강에서 모일까요?(Shall We Gather at the River?)’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기념가는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로 시작하는 ‘삼일절 노래’(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다. 인터넷에는 이 노래가 1946년 문교부 장관 안호상의 의뢰로 만들어졌다고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안호상이 문교부 장관이 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다. 실제로 삼일절 노래 등의 가사를 현상 모집한 것이 1949년이고, 1950년이 되어서야 ‘삼일절 노래’가 공식 기념가로 제정되었다. 이후, 이 노래 외에 ‘삼일운동의 노래’나 ‘삼일절가’ 등의 다른 삼일절 노래들은 거의 불리지 않게 되었다.
다시 상하이다. 1920년대 인성학교의 학생들은 삼일절 새벽에 우리 교포가 사는 곳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만세를 외쳤다. 그 옛날 상하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삼일절은 축제의 날이다. 어제 104주년 삼일절이었다. 3월 첫날에 그 옛날 상하이에서 울려 퍼진 삼일절 노래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