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미상, 빨래하는 여인들, 한강, 1948.

연일 난방비 상승 뉴스를 듣는다. 최근 온 국민이 체감하는 물가 인상 사례 중에 가장 파괴력이 크지 않은가 싶다. 뉴스가 학습을 시켜주니 관리비 고지서를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된다. 전기가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전기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불쑥 감사함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시각예술전문 출판사 눈빛은 인사동에 전시 공간을 열고 무명씨의 사진을 걸었다. 전시 제목은 박완서의 소설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같다. 소설은 6·25 전쟁 이후의 비극을 다루었지만, 전시된 컬렉션은 전쟁 이전의 서울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매에 출품되었던 필름 원고의 이력 덕에 촬영 연도와 장소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작가는 밝혀지지 않았다. 사진으로 남은 장면들을 통해서 카메라 뒤에 있었던 인물이 미군정 관계자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정도다.

1948년 겨울엔 서울에 눈이 많이 왔다고 한다. 폭설 기록이 남아있는데, 이 컬렉션에 포함된 사진에도 눈 쌓인 거리 장면이 상당수 있다. 아이들은 해맑게 뛰어놀고, 어른들은 무심한듯 꼿꼿하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 어쩌면 가장 극적인 변화를 눈앞에 두었지만 상상도 못 하던 시절의 일상이 사진에 담겼다.

여성들이 한강 한복판에서 얼음을 깨고 맨손으로 빨래를 한다. 얼마나 차가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매일 반복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적응해서 덜 춥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이내 숙연해진다. 얼음물에 젖은 치맛자락은 금세 뻣뻣하게 버스럭거렸을 것이고 아무리 추워도 빨래를 거를 수 없었던 저 손은 터지고 갈라졌을 것이다.

75년이 지났을 뿐인데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리는 더 이상 한복을 평상복으로 입지 않고 한강물은 잘 얼지도 않는다. 사진은 그걸 단박에 일깨운다. 그 해 겨울은 정말 따뜻했을까. 난방도 제대로 못했을 텐데 그럴 리가. 물론 반어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 속 사람들은 묘하게도 그리 추워 보이지 않는다. 차곡차곡 쌓아 올린 젖은 옷가지를 이고 얼어붙은 강물 위를 타박타박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이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위로 긴 시간의 강을 건너서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중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