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외사촌 노윤이 자러 오다


적막한 밤 사방에 인가라고는 없는

황량한 벌판에 살며

살림살이도 궁색한데

빗속에 위태한 누런 나뭇잎들은

등불 아래 백발 성성한 늙은이 같아라

너무 오래 홀로 쓸쓸하게 지내다 보니

염치없게 자네가 자주 와 주길

바라게 되네.

우리 원래 평생에 걸친 인연이거늘

하물며 외사촌 사이이니

말해 무엇하랴.

-사공서(司空曙: 생몰연대 미상)

(류인 옮김)

(원시 번역시와 다르게 행을 배치함)


당시(唐詩)300수(首)를 읽는데 외사촌과의 우연한 만남을 노래한 오언율시들이 많다. 한적하고 황량한 벌판에 사는 가난한 시인의 집을 어느 날 외사촌이 찾아왔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 이불을 깔고 누워 두런두런 회포를 푸는 재미가 꿀맛이었으리. 자신의 처지를 빗댄 ‘빗속에 위태한 누런 나뭇잎’이란 표현이 절묘하다. 홀로 지내다 보니 “염치없게 자네가 자주 와 주길 바라게 되네”라고 고백하는 시인. 이 시의 백미는 ‘염치없게’가 아닐까. 당나라 때 재인들의 삶을 기록한 ‘당재자전(唐才子傳)’에 따르면 사공서는 “용모가 준수하고 재능이 특출하나 성품이 강직하여 부귀 권세에 상관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를 다 읽은 뒤 내가 그리 궁색하지 않으며 인적 없는 들판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에 말뚝을 꽂고 우아하고 말이 통하는 이웃들과 가까이 산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당시를 읽고 위로받다니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