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 상징하는 흰옷 입고 새해 자축 - 미국 뉴욕 일대에 거주하거나 주변을 여행 중이던 유대인들이 유대력 새해인 로쉬 하샤나를 맞아 한자리에 모여 춤추고 노래하며 새해맞이를 즐기고 있다. 로쉬 하샤나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이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이 무렵 가장 좋은 옷으로 차려입는데, 색깔은 대개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이번 달 25일 일요일 저녁이 유대인의 새해 명절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이다. 유대력으로 5783년째 새해이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로쉬 하샤나를 이틀간 지키기 때문에 25일 해 질 때부터 27일 해 질 때까지 계속된다. 반면 개혁파 유대인들은 첫째 날 하루만 지킨다. 이날 회당에서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쇼파·Shofar)을 불어 ‘나팔절’이라 부른다. 유대인이 많이 사는 뉴욕시는 로쉬 하샤나를 비롯한 유대인의 절기를 아예 공휴일로 지정했다. 월스트리트 금융가가 유대인 절기에 어김없이 쉬는 이유다.

로쉬 하샤나는 크게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로쉬 하샤나는 ‘해의 머리’ 곧 한 해의 시작이라는 뜻이다. 둘째,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다. 셋째,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

탈무드에 의하면, 유대력의 첫날인 ‘로쉬 하샤나’에 여호와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셔서 천지창조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이 인류 역사의 시작으로 인간의 새해가 되는 것이다. 신년 행사는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부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믐달에서 초승달로 바뀌는 때 나팔을 100번 분다. 이후 기도문을 낭송한다.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너의 행위를 생각해보라. 창조주를 기억하고 그에게 용서를 구하라. 악한 길에서 벗어나 주께 돌아가라. 그가 자비를 베푸시리라.” 이렇게 나팔을 부는 것은 유대교 전통에서, 여호와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기 위해서, 사탄을 내쫓을 때, 회개를 촉구할 때, 왕의 취임식 때, 전쟁이 나서 백성들을 소집할 때 행하던 관습이었다. 곧 신년 나팔은 여호와가 우리의 왕이라 선언하는 날이다. 유대인들은 이때 가장 좋은 옷을 입는다. 대개 순결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경축한다.

우리가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듯 유대인들은 사과를 꿀에 찍어 서로 먹여주면서 “주님, 당신 뜻대로 우리를 행복하고 즐거운 새해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는 새해가 사과처럼 향기롭고 꿀처럼 달콤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낸다. 사과 대신 석류를 먹기도 하는데 석류 알맹이 수만큼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의미이자 석류 알맹이 수와 비슷한 율법 613가지를 잘 지키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생선 대가리를 먹으면서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도록” 빌기도 한다. 또 이날 강가에 모여 빵가루나 돌멩이를 강물에 던지는 ‘타실리크’ 의식을 거행하며 기도문을 읽는다. 타실리크는 ‘던지다’라는 뜻이다. 죄를 상징하는 누룩으로 만든 빵 부스러기를 강물에 던져버리듯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죄를 강물에 다 던져버려 달라는 기도이다.

유대인 설날 음식인 사과·석류와 꿀 - 유대력 새해인 로쉬 하샤나의 전통 음식은 사과와 석류이다. 꿀에 찍어 서로 먹여주면서 새해를 축복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유대교에서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여호와와 맺은 관계가 단절된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한 선행 조건이 있다. 먼저 회개하고, 기도하고, 죗값에 합당한 구제(자선)금을 내놓아야 한다. 이렇듯 죄지은 인간이 먼저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경우, 나팔을 불어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로쉬 하샤나’는 ‘여호와가 심판하는 날’이다. 여호와는 그날에 각 사람 행실에 따라 책 세 권에 기록한다고 한다. 세 책이란, ‘의로운 자, 악한 자, 중간에 속한 자’를 기록하는 책이다. 의로운 자는 ‘생명책에 옮겨 적혀 영원히 살 것이라’ 기록되어 봉인되고, 악한 자는 사망록에 기록된다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책에도 기록되지 못한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여호와는 10일 유예 기간을 준다고 한다. 10일 뒤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해와 욤 키푸르(대속죄일) 사이의 열흘을 “참회의 10일”이라 부른다. 이 기간에 유대인들은 생명책에 기록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참회하며 용서를 구한다. 나팔절에서 대속죄일까지 열흘 중 아흐레는 사람에게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여 그들과 화해해야 한다.

설날은 '나팔절'…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 100번 불어 - 유대력 새해인 로쉬 하샤나를 맞아 한 유대인 남성이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고 있다. 유대인들은 종교 의식이나 왕의 즉위, 전시 병력 소집 등 중요 순간에 나팔을 활용했다. /플리커

유대인은 이 기간에 지켜야 할 계명과 전통이 있다. 첫째, 새해에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묵상한다. 이를 위해 매일 일정한 시간을 따로 정해 놓는다. 둘째, 나팔절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죄를 자백하는 ‘고백의 기도문’을 읽는다. 이후 유대인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가족, 친지, 친구들을 찾아가 구체적으로 용서를 구한다. 마음의 빚뿐 아니라 빌린 돈이나 물건도 이 기간에 다 갚거나 돌려주어야 한다. 셋째, 잘못한 사람이 찾아와 용서를 빌면 받아주어야 한다. 탈무드는 “용서할 때는 삼나무처럼 뻣뻣하게 굴지 말고 갈대처럼 부드러워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남에게 용서받을 수 있겠냐는 뜻이다. 중세의 유명 랍비 마이모니데스도 “율법은 사람이 고집이 세거나 완고해서 화해하지 못하는 것을 금한다”고 가르치고, “사람은 가볍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넷째, 유대인들은 대속죄일 전에 구제(자선)금을 따로 떼어놓는 전통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이렇게 모든 인간과 화해를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대속죄일에 여호와께 지은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탈무드는 ‘여호와께서 사랑과 용서로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에게도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고 요청하신다’고 가르친다. 여호와를 사랑한다면 자기 주변의 인간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적 지혜를 담고 있다.

유대교 신년 로쉬 하샤나는 인류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자, 인간이 죄를 씻어 새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다. 로쉬 하샤나와 욤 키푸르가 함께 연결되는 이유이다. 매년 회개와 용서로 시작되는 새해는 유대인의 결속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그들을 거듭나게 만든다.

로쉬 하사냐 전날과 대속죄일 전날에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은 유대인이 꼭 지켜야 하는 종교적 의무다. 깨끗이 몸단장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로쉬 하샤나에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삶 속에도 새로운 세상이 다시 창조되기를 원한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로쉬 하샤나에 울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메시아가 온다고 한다. 지금도 정통파 유대인들은 이를 굳게 믿고 있다.

여기서 유래되어 기독교 역시 로쉬 하샤나 때 오실 예수의 재림을 믿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 교단은 로쉬 하샤나에 ‘휴거’가 찾아올 것이라고 선전했다. 휴거는 기독교 종말론의 하나로, 그리스도가 세상에 다시 올 때 선택받은 기독교인들이 공중에 들어 올려져 그분을 영접한다는 이야기이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신약성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 그들은 휴거 현상이 세상 마지막 날에 심판의 징조로 나타날 것이라고 선전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시키고 사회적으로도 큰 물의를 일으켰다.

[욤 키푸르 전쟁]

구약성서 레위기 23장 29절을 보면 여호와가 모세에게 말했다. “이날은 속죄일 곧 주 너희의 여호와 앞에서 속죄 예식을 올리는 날이므로, 이날 하루 동안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 누구든지 이날에 어떤 일이라도 하면, 내가 그를 백성 가운데서 끊어 버리겠다. … 이것은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너희가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이다.”

이렇듯 대속죄일에 유대인들은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25시간 음식과 물을 금하는 절대 금식을 하고 가슴을 치며 여호와께 지은 죄를 고백하고 은혜를 구한다. 1년 중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날이다. 모든 방송이 중단되고 도로 위의 모든 차량이 자취를 감춘다.

이러한 약점을 이용해 욤 키푸르 전쟁이 일어났다. 이스라엘 군대와 온 국민이 쉬는 1973년 10월 6일 욤 키푸르에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 두 전선에서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이 동시에 기습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 열일곱 여단이 전멸하다시피 해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파멸 직전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조국 이스라엘을 구하려는 일선 병사들이 강한 애국심으로 사투를 벌이면서 반격에 성공하고 전세를 역전시켰고 마침내 유엔, 미국, 소련의 중재로 휴전을 맞았다.

이 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지상군과 전차가 이제는 쓸모없음을 깨닫고 컴퓨터와 인공위성으로 제어하는 첨단 무기 개발에 주력해 군사용 드론과 무인 항공기, 그리고 미사일 방어 체계 ‘아이언 돔’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