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윤동주(1917∼1945)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이 두 문장을 읽으며 나는 그를 이해했다. ‘저항 시인’이라는 외피에 가린 그의 생얼굴. 이토록 정직한 고백, 치열한 자기반성을 조선의 다른 남성 시인들 시에서 읽은 적이 없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문학청년. 그의 가장 큰 관심은 여자이며 시대일 수밖에.

그는 이육사처럼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투사는 아니었지만, 시대를 슬퍼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식민지 백성의 슬픈 현실을 예민하게 인식한 시인은 바위처럼 정체된 자신을 돌아보며 괴로워했다.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뒤에 ‘그는 한 여성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을 그 여성에게 끝내 고백하지 않았다’는 친구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처럼 사랑에도 시대에도 소극적이었던 사람조차 바람을, 폭풍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