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트럼프 행정부 이후로 정치 현상에서 ‘양극화’라는 표현이 전면화되었다. 선거에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그렇지만 선거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극우에서 극좌까지, 모두 함께 살아간다. 가정에서 대립하고, 직장에서 대립하고, 교회나 절에서 대립하고, 이렇게 일상적으로 정치 갈등만 하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다. 나는 녹색당 당원이다.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일상에서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평생 조선일보를 보셨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에는 대법원 앞에서 벌어진 태극기 집회에도 혼자서 나가셨다. 그래도 부자지간인데 어쩔 것이냐. 딴청도 좀 부리고 대충 맞춰가면서 살아갔다.

‘페이크 뉴스(fake news)’라는 표현은 트럼프의 입에서 처음 들었다. CNN에 대해서 했던 얘기였다. 이제 미국 사회는 지지하는 정당에 따라서 일상의 문화도 극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고, 선거가 끝나도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게 최근에 생긴 정치 양극화다. CNN에는 트럼프 시대가 시청률 전성기였던 것 같다. 최근에는 시청률도 많이 떨어져서 예전 같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가짜 뉴스’라는 오명을 대통령에게 듣던 방송이지만, 상업적으로는 그때가 전성기였다. 미국 정치 양극화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다를까? 대선을 치르고, 연이어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한국도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일상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한국의 출산율 지표는 사실 대통령의 정치 성향과는 거의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과도한 정치 양극화와는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젠더 갈등에서 젠더 전쟁으로 더 강하게 진행된 지난 대선은 아마도 출산율에 일정하게 반영될 것 같다. 당대표 이준석에게 열광했던 남성들과 불꽃 박지현을 수년 동안 지지했던 여성들이 일상에서 만나면 어떻게 될까?

선거에서는 중도가 결국 승패를 결정 짓는다고 하지만, 남녀 사이에도 중도가 있을까? 젠더 등 정치 과열 상태가 된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결국에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정치와 일상이 공존하는 중립지도 필요하고, 너무 높아진 정치적 긴장감을 낮추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 같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서울시장 오세훈은 교통방송을 교육방송으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명분은 지금 누가 교통방송을 들으면서 운전하느냐는 것이다. 그대신 전산화 시대를 맞아 평생 교육의 장으로 라디오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라디오라는 매체의 문화적 기능과 미래 모습에 대한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운전하면서 누가 라디오 들으면서 길을 찾느냐고 했지만, 인공지능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 여건에 대한 공부를 누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하겠는가? 방송통신대에서 라디오로 공부하던 시절 발상 아닌가? 그래픽을 동원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을 라디오로 하겠다는 것 역시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이미 법인으로 전환된 TBS 방송이 싫어서 아예 없애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지금까지 오세훈 시장이 교통방송을 마음대로 못 했던 것은 서울시의회 때문인데, 지방 선거 이후로 이 상황도 변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 그리고 서울시의회까지 같은 당이 장악한 지금 그깟 라디오 방송국 하나 없애거나 바꾸는 게 어려울까? 그렇지만 역사에는 “오세훈이 김어준 싫어서 교통방송을 교육방송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한 줄 남을 것이다. ‘네시상륙작전 최장군입니다’는 내가 듣는 거의 유일한 TBS 방송 프로그램이다. 운전할 때 잠 깨는 데는 최고다. 가끔 잘 모르는 가수들 생목소리로 노래를 듣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교육은 모르겠지만 교통방송이 나름 B급 문화 기능은 지금도 충분히 한다. 나도 TBS에서 조그만 경제 코너 방송 하나 하고 있다.

이긴 자가 진 쪽을 지나치게 핍박하면 정치 양극화가 너무 심해진다. 방송의 중립성을 지키고, 문화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이 맞지, 아예 방송국의 목적 자체를 바꾸려는 무리한 행정은 보기에 좀 그렇다. 나도 김어준식 음모론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애청자들 멀쩡히 잘 듣는 라디오를 전면 개편한다는 것은 어쨌든 보복 행정이다. 과거 정부 때 블랙리스트로 ‘밥그릇 걷어차기’ 하다가 결국 정권의 위기가 왔다. 듣기 싫은 방송도 문화의 한 영역이라고 포용적으로 이해할 때 한국의 보수가 진짜로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