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이 내려온다’가 아니고 미사일이 내려온다. 임인년 새해 정월에 한국의 호랑이가 내려와 코로나의 액운을 퇴치할 것으로 잔뜩 기대했는데 북쪽에서 미사일 종합세트가 날아온다. 각종 미사일을 ‘검수 검사’라는 미명 아래 무작위로 쏘아댔다. 1월에만 7차례의 미사일 발사는 김일성, 김정일 집권 시기를 포함해도 초유의 일이다. 역대 최대 도발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왜 신년 벽두부터 군사모험주의 카드에 올인하는 것인가? 김정은은 지난 1월 17일 4번째 미사일 발사 이후 폭탄선언을 했다. 2018년 4월 선언했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예 조치(모라토리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코로나 발생 이후 국경 봉쇄로 군사력 증강 이외 나머지는 개점휴업이다. 집권 10년이 되었지만 2014년 신년사와 2016년 7차 당대회에서 약속한 ‘휘황한 설계도’는 미사일과 핵실험 이외에는 공염불이 되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모라토리엄 종료 선언의 함의를 살펴보자.
연초 7차례 미사일 발사와 모라토리엄 종료 선언은 북한의 군사도발 위협이 레드라인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1월 김정은이 선언한 국방력 발전 5개년 계획은 사면초가인 경제 분야와 달리 비약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핵과 경제의 병진 노선을 선언했지만 경제와 민생은 내팽개치고 국방에 베팅한 결과다.
김정은은 1월 11일 시험발사 현장에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성공’이라고 선언한 극초음속미사일 등을 선보였다. 설 연휴 기간에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2017년 화성-12·14·15를 순서대로 발사한 ‘미사일 어게인 2017′을 재현한 셈이다. 한미 요격망에는 빨간불이 들어왔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미국과의 대결 국면 조성으로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전가하는 전술이다. 코로나 비상방역은 북한의 무역 규모를 10분의 1로 축소시켰다. 단둥-신의주 물자 보급로가 차단되면서 장마당 판매대에는 물건이 사라졌다. 국가기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1월 중국 단둥을 출발한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하자 중국에서 온 물품을 확보하려고 북한 권력 기관이 아귀다툼을 벌였다. 북한 경제가 응급실에 있는 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주기적인 대외 긴장 고조는 북한 체제의 전통적인 핵심 통치술이다. 정보가 통제된 북한 인민들은 김정은의 교묘한 통치전략에 속수무책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3대 세습 체제가 가능한 이유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모라토리엄 종료는 동북아 국제정치의 세력균형이 요동치는 틈을 이용해 대북제재 해제에 올인하는 전략이다. 김정은은 1월 19일 정치국 회의를 열고 “미국의 날로 우심해지고 있는 대조선 적대 행위들을 확고히 제압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 과업들을 재포치(다시 전달)했다”고 매체들이 밝혔다.
베이징 올림픽을 마친 후에는 미·중 갈등 국면이 재연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경의 전운으로 미국의 전선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북한 편을 들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모라토리엄 종료 선언 이후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질주하는 김정은의 영상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종언(終焉)을 울렸다. 핵과 미사일로 무장한 평양과의 평화 논의는 애초부터 잘못된 만남이었다. 워싱턴과 평양의 동상이몽을 ‘운전자론’을 내세워 억지로 꿰맞추려는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는 가면극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이집트 순방에서 “2018년 9·19 군사합의로 군사적 긴장이 완화됐다”며 “평화는 우리가 강하게 염원할 때 이뤄진다”고 했다. 약자가 평화를 노래하면 오히려 전쟁을 불러온다는 점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또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남한 대선판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주었다. 법조인,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의 여야 대선 후보들이 벼락치기로라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학습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북한 미사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도권에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하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사드를 수도권에 배치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수도권에 날아오는 저고도 미사일에는 한국형방어체계로도 충분하다고 TV토론에서 격렬하게 반박했다. 그나마 후보들이 공허한 비핵화 논의보다는 핵과 미사일에 대한 철저한 방어체계를 논의한 것은 바람직하다. 북한 변수가 대선 토론판에 일자리 및 부동산 등과 함께 중심 화두로 등장한 것은 평양의 공세적인 미사일 전략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북한이 ‘품질 검사’를 명분으로 IRBM인 화성-12형을 4년여 만에 쏘아 올리면서 이른바 임계치로 간주되는 ICBM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4월 15일 110회 김일성 생일과 4월 한미연합훈련 전후 인공위성으로 가장해 발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핵실험의 카드도 만지작거릴 수 있다. 최근 북한이 북·중 국경 지역인 자강도 회중리에 ICBM 비밀기지를 완공한 것은 1950년 12월 하순 김일성이 국군과 유엔군에 밀려 자강도 만포시 별오리 지하벙커에 모여 중공군의 참전만을 기다리던 별오리 회의를 연상케 한다. ICBM 발사 이후 예상되는 미국의 ‘외과수술적 공격(surgical strike)’이 두려워 중국 국경 쪽으로 숨어버리는 전술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을 등에 업고 미국에 대응하는 전략은 3대 세습 이후에도 불변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대선판에서 여·야 후보 모두가 외교 안보에 대한 소양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최고 지도자의 어설픈 감성주의나 맹목적인 선입견이 가져온 외교안보 참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실현성 없는 종전선언으로 인한 외교력 낭비도 목도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참으로 결정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지도자는 전쟁을 막는 데 소명이 있지만 적의 칼끝이 목전에 왔는데도 평화만을 노래하면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