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어려움은 이제 진부한 주제가 되었다. 출생률의 급감으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과거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도시들도 산업 구조의 변화, 주요 기업들의 해외 및 수도권 이전 등으로 인해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지방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지방 대학의 어려움이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표현은 더 이상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더불어 서울 소재 대학에 대한 선호 증가는 지방 대학의 존립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곳곳에 위치한 ‘학사(學舍)’의 존재는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1975년 강원학사를 시작으로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서울 유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학사 또는 학숙이라는 이름의 재경학사는 현재 경기, 강원, 충북, 전북, 전남, 광주, 제주, 경남, 충남 등 8개 광역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기초지자체가 운영하는 학사도 20여 개에 이르고 있으며, 신규로 학사 건립을 추진하고자 하는 지자체도 계속 늘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원자력발전소가 소재한 기장군·경주시·울주군·영광군 등이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장학재단 등과 공동으로 서울에 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합 기숙사 건립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 등 수도권에 진학한 지역 출신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지자체와 지역 단체가 건립하는 재경학사의 존재는 모순적이다. 대학저널 보도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8개 광역지자체의 2021년도 예산안에서 경기도 26억800만원, 강원도 24억7940만원, 충북도 25억1750만원, 충남도 43억6308만원, 전북도 30억1300만원, 전남도 29억8200만원, 경남도 26억1430만원, 제주도 3억670만원 등 총 210억원을 장학숙 운영과 시설 개선 지원금 등으로 각각 예산 책정했다. 지역 단체의 모금으로 재경학사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미담이 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만 보기에는 복잡하다. 더군다나 이런 예산은 지역의 청년 복지 예산에서 지출되는 경우도 있다. 2019년 광주광역시의 청년 복지 예산은 55억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5억원이 남도학숙 관련 예산으로 책정되기도 하였다.

‘지자체 지원을 받은 학생들이 우수 인재로 성장하여 각계각층에서 지역사회의 발전을 지원할 것이다’라는 취지로 이루어지는 지자체의 장학숙 지원은 시간이 갈수록 당초 의도와 달리 점점 심화되는 수도권 쏠림 현상 속에서 더 많은 지역의 우수 인재들을 서울로 유출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지자체의 지원으로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해 본래 출신 지역으로 돌아오는 사례는 많지 않을 것임은 자명한 현실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입학 정원 미달 등으로 지방의 고등교육 자체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역지자체가 주민이 내는 세금으로 서울로 향한 유학생에게 장학숙과 장학금 등의 지원을 하는 것은 지방이 서울의 발전을 위해 돈을 지원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이런 시설의 지원 대상은 성적 상위권 학생에게 집중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을 기준으로 입소 자격을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정작 해당 시설의 입소가 간절히 필요한 저소득층 중하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모두가 지방의 위기와 발전 방안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에 대한 논의는 회피하고 있다.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위기감보다는 외부로부터의 지원과 현상 유지를 원하는 경향이 강하게 드러나곤 한다. 지방대학의 교육과정 개편과 학과의 통폐합, 그리고 새로운 교육과정의 도입은 모두가 필요하다고 이해하지만 정작 이해 당사자 간의 갈등으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변화하는 새로운 산업에 필요한 인력 양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직업교육은 전통적인 기능인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새로움과 변화의 적응은 서울 등 수도권의 몫으로 간주되고 있고, 사람을 지역 내에서 키워내는 것보다는 서울로 보내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가 재경학사의 지속적인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거창한 투자나 대규모 사업보다는 지역에서 작지만 소중한 인력들을 잘 키워내는 데 더 노력한다면 긍정적인 변화는 가능하다. 전문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바이오 산업은 수도권 산업으로 간주되지만 경북 안동은 지난 10여 년간 바이오제조GMP 인력 양성 사업을 착실하게 전개하면서 청년 취업은 물론 관련 기업의 지속적인 유치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작지만 꾸준한 노력은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인력의 양성은 반드시 대도시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맞춘 유연한 교육과정, 지속적인 지원을 통한 설비와 장비의 구축, 정보에 대한 적절한 분석이 이루어진다면 비대면 시대에 지방이 꼭 불리하다고만 볼 수 없다. 정작 필요한 것은 ‘그건 서울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일 것이다.

재경학사의 운영과 관리는 점차 민간 차원의 모금과 지원으로 운영되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지자체는 지역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을 지원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발언권도 가지지 못하는 청년들을 찾아 의견과 목소리를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라는 논리는 이제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시기가 곧 도래한다. 능력과 성취에 일부 부족함이 있더라도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기회를 주고 성장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는 자세가 필요하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지속할 때 지역은 체념에서 벗어나 변화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다.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