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에 진리나 아름다움이나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사람들은 조용한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좋다는 식이었어. 우리들은 그 후부터 통제를 계속해왔어. 물론 그것은 진실을 위해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어.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해. 자네들은 지금 그런 대가를 치르고 있어.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에서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달리는 지하철의 실내 스피커에서는 반드시 마스크를 쓰고 옆 사람과 대화하지 말라는 안내 방송이 반복된다. 승객들은 마스크로 입을 꼭 막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도 간혹 있지만, 그림과 짧은 대사만 이어지는 웹툰, 정치나 연예 관련 포털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드라마나 영화, 오락 프로그램을 보기도 한다.

과학이 발달한 ‘멋진 신세계’에서는 인간도 공장에서 생산된다. 크게 다섯 부류로 나뉜 사회 계급에 따라 외모와 지능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은 정해진 역할에 맞게 양육된다. 현실에 만족하도록 세뇌되기 때문에 누구도 불만을 갖지 않는다. 기분 나쁜 일이 생겨도 국가가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마약을 삼키면 그만이다. 슬픔도 분노도 없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다.

텔레비전이 바보상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원하는 프로그램을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세계적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고 남들과 똑같은 걸 본다고 자랑한다. 스마트폰을 바보상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최신 기기로 자주 바꾸고 더 많이 들여다보는 사람을 첨단 문명인이라 착각한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을 잃는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며 TV와 포털의 보도 열기가 뜨겁다. 그걸 본 대중들은 이자다, 저자다, 저마다 편들고 싸운다. 5년에 한 번, 4년에 한 번, 중간중간 탄핵과 보궐선거. 그렇게 해마다 무언가 바뀌면 고통이 사라질 거라는 기대, 우리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이것이야말로 사회를 유지하는 통제 방식, 대중에게 던져주는 마약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