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또 한번 한국 문화와 한류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리가 한국말로 울려 퍼지자 길을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hallyu(한류), daebak(대박) 같은 우리말 조어가 새로 등재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로나 통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유럽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클럽과 광장에서 K팝을 ‘떼창’하고 ‘떼춤’을 추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어 학습 앱인 ‘듀오링고(duolingo)’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후에 한국어 학습자가 76% 증가했다는 통계도 나왔고, 영국인들이 가장 애용한다는 백화점 유통 체인인 막스&스펜서에서는 고추장 판매가 200% 이상 증가했다고도 한다.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삽입 일러스트 / 오징어게임 대장동

# 이런 와중에 영국의 권위지 ‘더타임스’가 최근 일요판에 “한류, 한국 문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라는 기사를 실었다. 리드 부분이 이렇다. “지금 우리는 모두 K팬(K-fans)이다. 그러나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류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는 갑자기 사고 치듯 나온 게 아니다. 이는 정부가 야심 차게 수십 년간 기획해 나온 산물이다.” 한류가 갑자기 나온 게 아닌 것은 맞지만 그게 정부의 야심 찬 기획 산물이라고? 어째 황당하다는 느낌이 ‘확’ 든다. 그러면서 한류의 기원을 1993년으로 끌고 가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쥬라기 공원’ 상영 수입이 현대자동차 1년 수출액보다 성과가 좋다는 계산이 나오자 한국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육성과 수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딱’ 걸렸다.

# ‘쥬라기 공원’ 영화가 벌어들인 수입 금액과 자동차 수출액을 비교하는 문화산업적 통계치를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처음 들이민 사람은 이상희 전 과기처장관(당시 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이었다. 날짜도 1993년이 아니고 정확히 1994년 5월 17일 과기자문위원장의 대통령 보고 자리에서였다. 당시 필자는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일하며 이상희 위원장이 대통령께 보고하기 전에 그 문건을 함께 검토했기에 정확히 기억한다. 그리고 보고된 내용도 ‘현대자동차 1년 수출액’이 아니었다. 정확히 이랬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65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쥬라기 공원은 1년 만에 8억500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이는 우리나라가 자동차 150만대를 수출해서 얻는 수익과 같다.” 당시 현대차만이 아니라 대우, 기아차 모두 합쳐 한 해 동안 해외에 수출한 자동차 대수가 대략 64만대 정도였다. 그러니 현대차 1년 수출액이 아니라 당시로선 3년 치 수출액과 맞먹는다고 해야 얼추 맞는다.

# 하지만 이런 ‘깨알’ 팩트 체크로 ‘더타임스’의 한류 분석이 잘못됐다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문제의 핵심은 한류가 수십 년에 걸친 정부 주도의 야심 찬 기획 산물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 ‘쥬라기 공원’과 자동차 수출액을 비교한 보고가 웬만한 내용에는 귀 기울이지 않던 YS 대통령에게 솔깃하고 자극적인 내용이었음에 틀림없었고 그 후에도 꾸준히 인구에 회자하는 레토릭이었지만 정작 과학기술자문회의는 말 그대로 자문 기구여서 실질적인 집행력도 없었고, 실행 계획도 세울 수 없었다. 다만 당시 아직 신생 부처였던 문화(관광)부에서 문화 산업에 대한 인식을 좀 더 공고화하는 계기가 되었고 영상과 게임 분야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된 것은 맞는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5년에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상원이 다소 급하게 개원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하지만 ‘더타임스’의 분석 기사가 말하듯 이때부터 한국 정부가 엔터테인먼트 산업 육성과 수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과장됐을 뿐 아니라 진짜 핵심을 빗나간 다분히 교과서적인 분석이다.

# 한류의 진짜 핵과 원동력은 정부 시책이 아닌 대한민국 민(民)의 ‘미친’ 열정과 대물림해온 신명(神明)의 감성이었다. 대한민국은 늘 민(民)이 알아서 헤쳐가는 나라지, 관(官)이 살길 터주는 나라는 결코 아니다. 코로나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위드 코로나’로 간다 만다 하며 뒤늦게 호들갑이지만 정작 코로나 방역은 정부가 제때 잘해서라기보다는 국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지혜롭게 대응하고 민간 의료진들이 헌신적으로 막아냈기 때문이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오징어 게임’이 놀랍게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역시 정부가 밑판을 잘 깔아줘서가 아니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가 세계에 어필하는 한류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 드라마의 내용이 억지로 상상해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그런 현실을 너무나 처절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남들에게는 상상이지만 우리에게는 현실이기에 더 생생하게 표현하고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 작금 우리는 대선을 다섯 달 남짓 앞둔 채 ‘오징어 게임’마저도 대체하기 힘든 ‘대장동 게임’을 목격·목도하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 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스포일러를 하고 싶어도 현실이 상상을 앞질러 가 못 할 지경이다. 이런 가운데 같은 여당 내에서 여당의 대선 후보로 뽑힌 이가 구속될 것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는 것을 본다. 게임에서는 같은 편끼리 ‘깐부’라고 하지만 우리는 ‘깐부’가 꼭 같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현실의 정치에서 확인한다.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더 무섭고, 드라마 그 이상이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현실이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드라마이지만 우리에게는 일상인 세계를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 고추장에 또 고추를 찍어 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