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TV에서 다큐 ‘인생 정원’을 보고 저렇게 늙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풀밭에서 노는 인생이 가장 좋은 인생이거든”이라고 말한 사람은 83세 안홍선 할머니. 꽃과 노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는 그녀의 정원에는 장미나 튤립이 아니라 벌개미취와 참나리, 술패랭이 같은 들꽃이 가득했다. 이 꽃들은 “달리아가 피면 널 시집보내려 했다”는 아버지 말을 기억하던 몸 약한 그녀의 꽃들이었다.

꽃이 삐칠까 봐 이름 대신 “얘들아~”라고 부르는 그녀의 눈은 세상 아름다운 것들을 오래 보아 온 눈이었다. 햇빛이 주는 은혜로움에 모자를 벗고 일한다는 그녀는 자연이 자신에게 모든 걸 주었다고 고백했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단어는 ‘암묵지’(暗默知)다. 암묵지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체화되어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지혜라 부르는 많은 것은 이런 암묵지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꽃이 부추와 청경채에서 피어난다고 말해준 건 태백에서 자란 내 선배인데, 먹는 것인 줄만 알았지 나물에서 꽃이 핀다는 사실이 내겐 생소하기만 했다. 흥미롭게도 선배가 꿈꾸는 건 ‘나물 정원’이었다. 단지 아름답게 피어있기만 한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섭취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정원 말이다.

뿌리고 수확하는 게 인생이다. 그중 어떤 건 큰 나무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것은 꽃으로 피어난다. 하지만 싹을 제때 피우지 못해 허약하거나 응달 곁에 간신히 피어 있는 것들도 있다. 우리의 삶이 정원이라면 어떻게 가꿀 것인가. 응달 곁이라 속상해만 할 것인가, 햇빛 쪽으로 걸어 나오는 수고로움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얻었다 말할 것인가. 되는 대로 살 것인가, 생각대로 살 것인가. 이름 모를 들꽃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저 들꽃들이 만든 정원이 세상 어떤 곳보다 아름답다는 걸 알게 해준 할머니의 마음과 정성을 보며 세상엔 숨은 예술가가 참 많구나 생각한다. 나는 들꽃에서 다시 겸손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