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나비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金起林·1908~?)

나비

나비의 허리에 걸린 “새파란 초생달”이 산수화 한 폭 같다. 선명한 이미지, 절제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김기림이 일제강점기에 이처럼 우리말의 맛을 잘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시를 썼다.

처음 읽을 때는 귀엽고 앙증맞고 서글픈 공주의 시였다. “공주처럼 지쳐서” 바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철없이 나대다 물결에 흠뻑 젖어 돌아온 나비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없다.

푸른색에 속아 무밭인 줄 알고 바다에 내려갔다 날개가 젖었다. 날개가 젖은 나비가 다시 날 수 있을까? 다시 읽으니 심상치 않다. 그 바다는 일본 유학생이었던 김기림이 건넌 현해탄. 나비는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좌절한 식민지 지식인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여러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따뜻한 봄날 나는 이 시를 바다처럼 넓은 세계를 동경하다 가혹한 현실에 좌절한 예술가의 자화상이 아니라 그냥 바다와 나비 이야기로 읽고 싶다. 바다를 모르는 나비는 물결에 흠뻑 젖어가면서 바다를 배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