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 창령사 터에서 발굴된 오백나한 중 웃는 얼굴(왼쪽)과 화내는 표정(오른쪽).

임진왜란이 일어난 시점에 두 고승이 있었다. 한 명은 서산(西山·1520~1604) 대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진묵(震黙·1563~1633) 대사이다. 서산은 현실 문제에 적극 개입하였지만, 진묵은 산문(山門)을 지킨 비참여파를 대표한다.

진묵은 술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곡차(穀茶)라고 하면 마시고 술이라고 하면 마시지 않았다. 한번은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 신도가 진묵 대사를 찾아와 아들을 하나 낳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렇다면 보살이 곡차를 좀 가지고 와 봐라.” 스님이 술을 가지고 오라고 하니까 마음속에 약간 불만이 생겨난 그 신도는 옹기그릇에 막걸리를 가득 채워서 진묵 앞에 갖다 놓았다. 그런데 그 막걸리에는 쌀겨가 하나 둥둥 떠 다니고 있었다. 진묵은 쌀겨를 보면서도 이를 손으로 건져내지 않고 통째로 술을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오백나한을 모셔 놓은 나한전(羅漢殿)에 들어가 손가락으로 나한상 머리를 툭툭 치면서 한마디 하였다. ‘이번에 너희 중에 누가 인간 세상으로 나갈래?’ 불교에서 나한은 에고(ego)의 뿌리를 완전히 소멸시킨 성자에 해당한다. 얼마 후에 그 아이 없던 보살은 마침내 임신해서 아들을 낳았다. 자식을 낳았다고 기뻐했는데 자세히 보니 아이 눈동자에 쌀겨같이 생긴 흰 점이 박혀 있었다. “대사님, 자식을 점지해 주시려면 온전하게 주시지?” “보살이 곡차에다가 일부러 쌀겨를 둥둥 띄워서 가지고 오지 않았느냐. 그 심술에 대한 과보다.”

21세기 판타지 영화의 한 대목이 연상된다. 오백나한 조각상이 도열해 있는 고색창연한 건물 나한전에서 술 취한 진묵이 툭툭 나한들의 머리를 두들기는 장면 말이다. 나는 대학 다닐 때부터 이 전설을 들었으나 그 현장이 정확히 어디인지를 몰랐다. 근래에 전남 장성군의 백양사 주지 스님 무공(無空·61)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 나한전이 백양사 백학봉 밑에 있었던 나한전이었다.

150m 높이로 우뚝 솟은 흰색 바위 절벽이 마치 백학(白鶴)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암봉이 백학봉이다. 이 백학봉의 기운을 직통으로 받는 지점에 나한전이 있었으나 6·25 때 불타고 말았다. 불타기 전까지 이 나한전은 아주 영험한 기도 터였다. 경상도에서는 은해사 거조암(居祖庵)의 오백나한이 유명했다면 전라도에서는 백양사 나한전을 꼽았다. 진묵 대사가 백양사 나한전에 많이 머물렀는데, 나한 전설은 이때 성립되었다는 게 무공 스님의 증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