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유행한 콘텐츠가 있다. 한 엄마는 “너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하고, 옆에 있던 다른 엄마는 “너는 공부해서 저런 분들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해”라고 한다. 나는 거기서 ‘저런 분’에 해당하는 택배 기사다. 이런 동정이 꼭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택배를 오배송하거나 분실했을 때 내가 변상해야 한다고 하면 “괜찮다”며 안 받겠다는 고객이 더러 있다. 이럴 땐 참 좋다.
그러나 동정이 우리의 직장을 없앤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택배노조가 새벽 배송을 금지하자고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말했다고 한다. 이후 인터넷 세상이 새벽 배송 금지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새벽 배송 금지를 옹호하는 사람도 있고, 새벽 배송은 필요하다는 사람도 있다. 페이스북에서 이 주제로 정말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할수록 숨이 턱턱 막혔다. 새벽 배송을 금지하면 안 된다고 하니 나를 노동 착취하는 사람으로 몰더라.
이쯤 되니 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혹시 새벽 배송이 주간에 배송하고 야간에 추가로 배송하는 거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지 말이다. 새벽 배송은 밤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는 일이다. 주간에도 일하고 또 밤새 강제로 하는 일이 아니다. 모든 택배 기사가 그렇듯 노동자도 아니다. 개인 사업자를 내고, 자기 돈으로 차를 사고, 세금을 내는 사장들이다. 이건 마치 편의점 24시간 열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따라서 새벽 배송을 하지 말자는 건 영업시간을 제한하자는 것과 같은 말이 된다. 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영역을 침범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새벽 배송을 하는 택배 기사들이 다른 시간대에 일하는 택배 기사들보다 특별히 근무시간이 긴 것도 아니다. 내가 해본 새벽 배송은 편하다. 주민과 마주칠 일이 적고, 그래서 엘리베이터 잡는다고 한 소리 들을 일이 거의 없다. 도로가 뻥 뚫려 정말 쾌적하다. 주간에는 차량 정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스트레스인데, 심야 시간에는 그냥 길을 막고 배송해도 된다. 거기에 배송 수수료도 주간보다 높다.
현재 전국의 택배 기사는 약 1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중 택배노조 밴드 가입자는 8000여 명이다. 따라서 택배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진행될 때 전체 택배 기사 중 10%도 되지 않는 택배노조의 목소리만 과대 대표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조가 아닌 일반 택배 기사의 목소리는 왜 반영되지 않는가? 비노조 연합 밴드에 가입한 택배 기사도 6000명이 넘는다.
택배노조는 모든 사람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해가 진다고 세상이 멈추는 게 아니다. 밤에도 세상은 굴러가야 한다. 밤에도 다친 사람을 받아줄 병원이 있어야 하고, 밤에도 전기가 나와야 하고, 물이 나와야 하며, 밤에도 음식을 시켜 먹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일자리를 단지 힘들어 보인다고, 불쌍해 보인다고 없애는 건 유아적 사고다. 새벽 배송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여론이 나쁘니 이번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금지하자고 말을 바꾸는 분위기다. 그 시간에 일하는 게 새벽 배송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새벽 배송은 시작된 지 겨우 몇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생활에 깊게 녹아들어 어느새 우리 일상이 됐다. 새벽 배송을 할지 여부는 택배 기사 각자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 누군가 하라고 하거나 하지 말라고 강제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