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중국에선 쑨원의 국민당이 갓 출범한 공산당을 압도했다. 당시 군벌 제거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공산당원이 국민당에 개별 입당하는 방식으로 1차 국·공 합작을 했다. 그런데 군권을 잡은 장제스는 당내 공산당원부터 숙청했다. 군벌보다 공산당의 세력 확장을 경계한 것이다. 공산당은 소멸 직전까지 몰렸으나 일제 침략으로 기사회생했다. 장제스는 합쳐서 일제와 싸우라는 여론에 밀려 다 이긴 국공 내전을 중단하고 2차 국공 합작을 했다. 국민당군은 일본과 싸우다 100만명 이상 전사하는 타격을 입었다. 반면 공산군은 대규모 전투를 피하며 전력을 보존했다.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쫓겨간 국민당은 1987년까지 계엄으로 통치했다. 원주민 저항은 폭력 진압했다. 그런데 2000년 대선에서 원주민 정당인 민진당 후보가 처음 당선됐다. 처음으로 정권을 잃은 국민당의 위기감은 컸다. 그들은 중국 본토를 다시 보았다. 공산당은 불구대천이었지만 같은 본토 출신이었다. 국민당 인사들 친척은 여전히 본토에 살았다. 1992년 공산당과 국민당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이런 합의에 민진당은 반발했다. 그들에겐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중국 본토가 뿌리인 정당이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대만 독립을 추구한다.
▶2008년 대선에선 국민당 마잉주 후보가 ‘중국과 협력해 경제 성장’을 내걸고 당선됐다.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2010년 대만 성장률은 10.6%를 찍었다. 통상, 통신, 통항 문제가 풀리면서 대만 기업은 중국으로 몰려갔다. 대만 무역에서 중국 비중이 40%를 넘기도 했다. 2015년 시진핑 주석과 마잉주 총통이 분단 후 66년 만에 첫 정상회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마잉주는 “양안은 중화 민족”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만에서 민진당 세력은 꺾이지 않고 있다. 국민당은 본토가 고향인 1세대가 없어지며 지지층이 얇아지고 있다. 특히 민진당 텃밭인 남부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중국인 아닌 대만인’이란 정체성도 강해지고 있다.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대만인의 마음을 얻는 것이 숙제가 됐다.
▶12일 시진핑이 국민당 정리원 주석을 만난 선물로 ‘대만 농수산물 수입’ 등을 줬다. 양안이 가까워지면 전쟁 위험도 없어지고 돈 벌 기회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대만 경제는 미국 비중이 중국을 앞질렀고 ‘홍콩 민주화’가 짓밟힌 이후 중국을 싫어하는 유권자도 증가했다. 국민당과 공산당의 3차 국공 합작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