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네덜란드의 여성 정치인 파트리샤 라이흐만이 로테르담 시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곧바로 거센 논란이 일었다. 선거 직전 배포된 홍보 사진이 실제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당선 후 대중 앞에 선 그녀는 59세 나이에 걸맞은 주름을 지닌 각진 외모였지만, 사진 속 파트리샤는 20대로 보일 만큼 앳된 할리우드 배우 미모였다. 여기에 거주지 허위 기재 의혹까지 겹쳤다. 소속 정당은 “정치인의 생명은 정직과 신뢰인데, AI 보정 사진은 유권자를 기만한 행위”라며 자진사퇴를 요구했고, 그녀가 거부하자 결국 제명을 결정했다.
▶한국에서도 ‘늑구’ 조작 사진 때문에 나라가 들썩였다. 대전의 동물원에서 늑구라는 이름의 한살배기 늑대가 탈출했고, 이어 횡단보도 앞 도로에 늑대가 서 있는 생생한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하지만 차선의 개수가 실제와 다르고 이정표 외곽선이 뭉개지는 등 AI 특유의 오류가 발견됐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이 가짜 제보를 믿고 엉뚱한 곳을 수색하느라 정작 중요한 수색의 골든 타임을 놓쳐버렸다.
▶AI 조작 사진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흑인 유권자들과 어깨동무하며 웃는 AI 생성 이미지를 유포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미국과 이란 전쟁에서도 자신들의 폭격을 과장하거나 피해를 감추기 위한 가짜 사진과 영상이 심리전의 도구로 동원됐다. 기술의 진보가 정치적 선동과 결합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착한 조작’도 있다. AI 덕분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우리는 팔순을 넘긴 노배우들의 어색하지 않은 젊은 시절 연기를 볼 수 있다. ‘아이리시맨’이나 ‘인디아나 존스’ 최근 편에서 로버트 드 니로와 해리슨 포드는 활기 넘치던 청년과 중년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떠난 송해가 ‘전국노래자랑’을 다시 진행하고, 배우 최민식이나 이병헌도 스크린에서 20대로 부활한다. AI 기술이 세월의 한계를 지워 버렸다.
▶네덜란드 여성 정치인이나 늑구의 AI 사진을 보며 드는 걱정이 있다. 사실일까 조작일까 의심하는 단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기본적 불신’이 팽배해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다. 이제 대중은 어떤 놀라운 사진을 봐도 감탄에 앞서 “AI로 ‘딸깍’ 만든 거겠지”라며 냉소부터 보내지 않을까.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인 인간의 땀방울마저 자칫 ‘가짜’라는 의심의 감옥에 갇혀버릴 수 있다. 조작에 속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진짜를 보고도 믿지 못하게 된 우리의 메마른 미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