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터진 이란·이라크 전쟁이 서로의 석유 수출 길을 겨냥한 ‘유조선 전쟁(Tanker War)’으로 번지자 세계는 경악했다. 이라크가 이란의 유전 지대를 타격하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깔았다. 이라크를 지원하는 미국 등에 대한 보복이었다. 3차 오일 쇼크로 이어졌다. 전 세계 석유의 20%가 지나는 폭 33㎞의 좁은 해협이 이란 종교 정치 집단의 천혜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세계가 뼈저리게 깨달은 시발점이었다.
▶당시 트라우마로 중동 산유국들은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며 탈(脫)호르무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UAE는 아부다비 유전에서 해협 바깥쪽 푸자이라항까지 370㎞를 잇는 하브샨 송유관을 깔았다. 사우디는 아예 아라비아 반도를 동서로 1200㎞ 가로질러 홍해 얀부항으로 이어지는 거대 송유관을 건설했다. 하지만 경제성이 문제다. 원유를 밀어내기 위해 거대 펌프를 24시간 돌리는 전기료와 강철관 부식에 따른 유지비 등은 유조선 운임보다 훨씬 비쌌다. 총 수송량도 하루 700만 배럴 남짓으로 호르무즈 물동량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송유관은 평소 절반 정도 가동하고 비상용에 머물러왔다. 하지만 이란 전쟁으로 이 송유관도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오만의 ‘무산담 운하’ 구상도 그 연장선에 있다. 호르무즈 길목인 무산담 반도의 해발 2000m 석회암 산맥을 통째로 도려내,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직결해 이란을 피하는 새 바닷길을 내자는 담대한 구상이다. 1000억달러(약 150조원)의 비용과 30년의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구상으로만 머물러 왔다. 하지만 최근 이 거대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재검토하자는 목소리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호르무즈만이 아니라 좁은 바닷길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 2021년 수에즈 운하에서 초대형 컨테이너선 한 척이 좌초했다. 단 일주일 운하를 막았을 뿐인데 하루 10조원 규모의 물동량을 틀어막으며 세계 공급망을 마비시켰다. 배 한 척 사고로 지구촌 물류가 동맥경화에 걸리는 것은 충격이었다.
▶19세기 수에즈 운하, 20세기 파나마 운하를 만들며 인류는 역사를 새로 써왔다. 태국의 크라 운하나 니카라과 운하 구상도 지리(地理)의 제약을 극복하려는 몸부림이다. 인공지능과 위성이 지배하는 시대라지만 인류는 여전히 좁은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를 전적으로 수입하는 우리에게 산유국들의 호르무즈 해협 대안 찾기는 결코 남 얘기가 아니다. 숨통이 하나인 것보다는 둘이 낫다. 지금 중동 국가들의 움직임을 잘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