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고 첫 손에 쥐는 칫솔부터 화장대의 립스틱, 출근길 입는 기능성 셔츠와 코로나 때 생명줄이었던 마스크의 필터까지 모두 나프타가 핵심 원료다. 일상생활뿐 아니다. 조선소에서 육중한 철판을 자르는 산소절단기의 용제, 자동차를 가볍게 만드는 고강도 내장재, 반도체 특수 세정제까지 산업 현장에도 나프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은 없을 정도다.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거의 모든 물건에 나프타의 지분이 있으니 ‘산업의 쌀’을 넘어 ‘문명의 세포’라 불릴 만하다.

▶원유(原油)를 가열하면 끓는 점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의 형제들이 태어난다. 가장 낮은 온도에서 나오는 LPG를 시작으로 온도가 올라가며 나프타와 가솔린이 섞여 나오고, 이어 등유·경유·중유가 분리된다. 19세기 중반 석유 산업 초기엔 등불을 밝히는 등유만 귀한 대접을 받았다. 끓는 점이 낮아 폭발하기 쉬운 나프타는 ‘쓸모없고 위험한 부산물’ 취급을 받으며 버려지기 일쑤였다. 20세기 화학 공학이 꽃을 피우면서 이 천덕꾸러기는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귀한 몸이 됐다.

▶나프타를 다른 물질로 변환시키는 과정은 현대판 연금술 같다. 거대한 가마솥에서 섭씨 800도 이상의 초고온으로 나프타를 달구면 탄소 사슬이 끊어지며 기초 원료들이 쏟아진다. 여기서 나온 에틸렌은 투명 랩이나 화장품 용기가 되고, 프로필렌은 배달 용기나 가전제품 외장재가 된다. 여기에 파라자일렌(PX) 공정을 더하면 폴리에스테르 섬유와 페트(PET)병이 탄생한다.

▶중동 전쟁 여파로 나프타 공급망에 빨간불이 켜지며 ‘금(金)프타’로 불리고 있다. 우리는 원유 한 방울 나지 않지만 나프타를 가공해 전 세계로 수출하는 세계 4위권 석유화학 강국이다. 필요한 나프타의 45%를 수입하는데, 그중 70%가 중동산이다. 전쟁으로 나프타 부족에 직면한 플라스틱·섬유 공장들은 문 닫기 직전이라며 아우성이다. 식당 주인들은 배달 용기를 사재기하고, 일반 가정에선 쓰레기 종량제 봉투까지 미리 쌓아두고 있다.

▶결국 정부가 나섰다. 지난 27일부터 나프타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4695억원의 추경 예산까지 편성해 나프타 확보에 들어갔다. 잘못하면 산업의 심장이 멈출 판이다. 탄소 중립 시대라며 ‘탈(脫)석유’를 외치지만 오늘 먹은 도시락 통부터 내일 입을 옷까지 나프타 없는 삶은 아직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나프타 파동’은 당연하게 누리던 일상이 충격 한 번에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디 나프타만 그러겠는가.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