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화장실은 소위 ‘푸세식’이었다. 누적된 암모니아와 소리 내며 달려드는 파리 떼. 청소 당번인 날은 지옥이었다. 입이 걸었던 담당 선생님은 “핥아도 될 만큼 깨끗하게 닦으라”는 ‘군대식’ 지시를 내리곤 했다. 그 때 친구는 “유럽은 돈 내고 화장실 간다는데 우리는 돈 받고 들어가야겠다”고 했다. 한국이 후진국이던 시절이었다.

▶선진국에서 태어난 자식 세대에게 그런 과거는 상상의 영역이다. 최근 친구들과 도쿄 건축 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조카는 “여긴 돈을 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며 감탄했다. 일본 시부야의 ‘도쿄 토일렛(화장실) 프로젝트’ 이야기다. 안도 다다오, 구마 겐고 등 일본의 거장들이 지은 17곳 공공 화장실은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다.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청소원 역할을 맡은 야쿠쇼 코지가 정성껏 닦던 그곳들이다. 일본에서 화장실은 단순한 배설 공간이 아니라 환대의 상징이다. 모두 무료다.

▶반면 유럽은 ‘유료 화장실’의 본고장이다. 2000년 전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는 공중화장실에 ‘오줌세’를 처음 물린 인물이다. 아들이 오물에 세금을 매겨도 되느냐고 묻자 황제는 금화를 들이대며 말했다. “돈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화장실이 수익 모델로 등장한 첫 장면이라고 한다. 지금도 유럽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동전이 없으면 입구를 막아서는 화장실 관리인 앞에서 문화적 충격을 겪곤 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유료 화장실’ 논란이 일고 있다. 카페 키오스크 메뉴에 2000~5000원짜리 ‘화장실 이용권’이 등장했다고 본지가 보도했다. 음료 주문 없이 화장실만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하던 자영업자들의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사유 화장실에 아무나 들어와 험하게 쓰게 둘 수는 없다’는 의견과 ‘인심 야박하다’는 반대가 팽팽하다. 이 뿐 아니다. 정부는 민간 건물에도 ‘개방 화장실’을 유도하며 지원금을 줘왔지만 그 지정을 취소해 달라는 건물주가 급증했다고 한다. 도심 집회나 시위 참여자들의 무분별한 이용으로 더럽혀진 화장실을 견디다 못한 탓도 크다고 한다.

▶화장실 문을 여는 것 자체가 ‘공포’였던 시절은 오래 전에 끝났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본 탈북민이 “여기서 살아도 되겠다”며 놀랄 정도로 한국 화장실의 청결·시설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제는 그에 걸맞은 매너가 필요할 때다. 모두가 사용하는 타인의 공간을 이용자들이 제 집처럼 아꼈다면 한국에서 유료 화장실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도 같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