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네팔 대지진으로 전기가 끊기며 수도 카트만두는 암흑천지가 됐다. 당시 1주일 동안 현장을 취재한 동료 기자는 전기가 없어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체험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문명의 실종이었다. 수세식 화장실이 막히자 사람들이 하나둘 건물 밖으로 나가 땅을 파고 용변을 보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는 통신 두절 상태에 빠졌다. 상·하수도가 끊기며 먹을 물도 씻을 물도 사라졌다. 사나흘쯤 되자 사람들은 근처 개울물에 들어가 몸을 씻기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곧 몸을 담글 수 없을 정도로 수질이 더러워졌다.

▶전기가 끊기면 사소한 일상부터 유지하기 쉽지 않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의 시골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많았다. 필자의 어머니는 호롱불 아래서 살았다. 여름에 더우면 행여 남이 볼까 봐 캄캄한 밤에 동네 앞 개울로 나가 목욕을 했다. 전기 없던 시절의 삶이었다. 냉장고는 꿈도 못 꿨고 아이스박스가 전부였다. 그런데 누구나 냉장고를 갖고 사는 지금, 오히려 정전 대비 아이스박스가 꼭 필요하다고 한다. 냉장고 안에 둔 음식이 상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계는 4시간이어서 전기가 오래 나가면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옮겨 둬야 한다는 것이다.

▶전기 의존도가 높은 선진국일수록 정전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2003년 미국 북동부를 덮친 대정전은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뉴욕 맨해튼은 네온사인이 모두 꺼졌다. 대중교통과 신호등이 마비됐고 수십만 명이 지하철에 갇혔다. 하수처리장 가동이 멈추며 오수가 거리로 역류했다. 3일간 지속된 정전 피해액이 60억달러(당시 가치 72조원)에 이르렀다. 지난해 4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덮친 대정전 때는 신용카드 시스템이 중지돼 현금이 없으면 밥을 사 먹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1977년 미국 허드슨강 변전소에 벼락이 떨어지며 시작된 뉴욕 대정전 때는 무법천지가 펼쳐졌다. 상점 1700곳이 약탈당했고 자동차 도난과 방화가 잇따랐다. 3700명이 체포된 이 사태를 시민들은 ‘공포의 밤’이라 했다. 오늘날엔 중환자일수록 생명 유지에 전기의 도움이 필수다. 산소호흡기를 비롯한 의료 기구가 멈춰 수술까지 중단되니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는 대형병원은 자체발전기가 필수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가 거듭되는 대정전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수도 아바나 시민들은 낮에 소형 태양광 패널로 충전한 휴대전화 불빛에 기대어 칠흑 같은 밤을 버틴다고 한다. 쿠바 사태는 새삼 전기가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