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리비아 내전의 포화 속에서 서구 건설사들이 비싼 장비를 버리고 앞다퉈 탈출할 때 대우건설 현장에 남기로 한 필수 요원들이 현지 부족장들을 찾아갔다. “우리가 떠나면 이 발전소와 도로는 멈추고, 당신들 아이들의 미래도 끊긴다”고 호소했다. 감복한 부족장들이 총을 든 마을 청년들을 보내 사업장을 24시간 철통같이 지켜준 일화는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온다. 포탄이 오가는 사선(死線)에서 이들이 쌓은 것은 건물이 아니라 K-건설의 밑천이 된 신뢰였다.
▶기업의 ‘필수 인력’은 위기의 순간, 가장 마지막에 짐을 싸야 하는 사람들로 ‘산업 전사’라 불러 마땅하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공포가 중국 전역을 마비시켜 글로벌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질 때도 우리 기업 필수 요원들은 끝까지 중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 기업들은 중국 측과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중국 특유의 관시(關係)를 맺을 수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LG전자는 지금도 필수 요원을 상주시키며 애프터서비스망 등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 간식’ 초코파이로 러시아 시장을 장악한 오리온은 전쟁 와중에도 고속 성장 중이다. 전쟁 초기 글로벌 물류망이 봉쇄돼 원재료 수급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혹한을 뚫고 대체 공급선을 찾아내 100% 공장 가동률을 이뤄냈고, 최근 3년 새 러시아 매출이 4배 치솟았다.
▶한국 기업만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코카콜라 우드러프 회장은 “전장에 있는 군인은 어디서든 단돈 5센트에 콜라를 마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은 적자지만 미래 투자로 보았다. 군복 입은 코카콜라의 기술 파견관 140여 명이 유럽 등 최전방 수십 곳에 현지 병입 생산 라인을 구축해 이 약속을 지켜 냈고, 코카콜라는 전후 세계 1위로 우뚝 섰다. 이때 코카콜라 필수 요원 2명이 결국 사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중동 분쟁 지역 필수 인력 500여 명에게 1인당 500만원 상당의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하는 이들에 대한 예우와 보상일 것이다. 필수 인력이라는 말 뒤에는 그들 가족의 공포와 눈물이 숨어 있다. 폭음이 들리는 창밖을 보며 업무를 이어가는 이들은 말 그대로 산업 전사다. 기계는 멈췄다가 다시 작동하지만 사람 사이의 신뢰는 멈추는 순간 사라진다. 기업 필수 인력들이 전장에서 지켜내고 있는 것은 단지 제품과 공장이 아니라 미래에 먹고살 자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