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팔순을 넘겼을 때 하버드 의대 교수인 아툴 가완디의 책을 읽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 모두는 늙고 죽는다. 그 과정은 점차적이지만 가차 없다.” 가완디는 미국의 요양 병원이 노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고 했다. 존엄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은 1980년대 초반까지 치매나 병이 있는 노인들을 요양 병원의 침대에 묶고 기저귀를 채웠다. 하지만 사회복지법인의 이사장이었던 고야마 다케오의 생각은 달랐다. 기저귀는 노인들의 존엄을 빼앗는 도구일 뿐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직원과 간병인 모두에게 기저귀 하루 체험을 하게 했다. “상상 이상으로 축축하고 기분 나쁘다” “누가 갈아주길 기다리는 시간이 굴욕적이다”라는 경험담이 터져 나왔다. 일본에서 ‘기저귀 제로’ 운동의 시작이었다.

▶물론 기저귀를 그냥 벗길 수는 없었다. 몸의 배설 기능을 되살리는 의학적 접근이 필요했다. 누워만 있으면 방광이 소변 모아두는 기능을 잃어버린다며 일정 시간 오줌을 참게 했고, 변비를 막는 하루 1500ml 이상의 수분 섭취, 죽이 아닌 씹는 음식, 변기에 앉아 중력으로 볼일 보기 훈련, 그리고 매일 일정량의 걷기를 시켰다. 욕을 입에 달고 살던 한 치매 할머니는 기저귀를 떼고 변기에서 볼일을 본 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존댓말로 인사해 담당 간병인을 감동시키기도 했다. 알고 보니 할머니의 난폭함은 치매 때문이 아니라 기저귀로 인한 수치심이 만든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통념과 다른 통계가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기저귀는 이제 유아용보다 성인용이 더 많이 팔린다. 2024년부터 역전됐다. 일본은 이미 10년 전부터 그랬다고 한다. 건강하지만 요실금이 있는 노인들이 품격 있는 외출을 위해 언더웨어형 기저귀를 찾기 때문에 발생한 역전 현상이다. 하지만 기저귀를 찰 때나 벗을 때나 목적은 하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도 냄새·낙상·욕창·와상(臥床)을 없애고 기저귀와 억제대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4무 2탈 요양 병원’이 인기라고 본지가 보도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실천하는 시설은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복지부도 마침 27일부터 가족에게 돌봄 해방을 선사하는 ‘통합 돌봄’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내년부터는 간병비도 일부 지원한다. 관건은 예산과 인력이겠지만 결국 ‘존엄’이 먼저다. 기저귀 너머의 인간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노화라는 가차 없는 운명 앞에 선 인간이 서로에게 약속할 수 있는 최선의 예우일 것이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