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미 상원 군사위 이란전 청문회에 나온 이라크전 파병 군인 출신 예비역 해병대원의 발언은 뜻밖이었다. “우리 아들딸을 이스라엘 때문에 전쟁터로 내몰 수 없다. 이스라엘을 위해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해병대원은 경찰에 끌려나가다 팔이 부러졌다. 이후 워싱턴·뉴욕·LA에서 그의 주장에 동조해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미국에서 반(反) 이스라엘로 찍히는 것은 사회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일론 머스크가 자신 소유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유대인 비판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가 줄줄이 광고를 취소당하고, 하버드대와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이 반유대주의를 명확히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자리에서 쫓겨난 게 불과 2년 전 일이다.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2.4%에 불과하지만 정치·경제·문화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유대인=홀로코스트 피해자’라는 동정적 인식도 확고하다.

▶그런데 지난 2월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 41%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반면, 이스라엘을 지지한다는 대답은 36%였다. 3년 전 조사에선 이스라엘 지지가 54%, 팔레스타인 지지는 31%였다. 2023년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테러로 시작된 가자 전쟁과 최근의 이란 전쟁이 만든 변화다.

▶유대인은 오랜 핍박 속에 스스로를 단련해온 민족이다. 세계 인구의 0.2%밖에 안 되는데도 노벨상 수상자의 22%를 차지한다. 고작 경상북도 크기 나라가 무력과 정보력이 무섭다. 레바논 헤즈볼라 민병대원들이 주머니 속 무선호출기 폭발로 수 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며 혀를 내두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제 도를 넘는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자전쟁으로 팔레스타인 주민 7만2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하마스 테러로 희생된 이스라엘인 1200명의 60배다. 가자 건물들 연쇄 폭발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은 이스라엘 군인들을 본 세계는 이스라엘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30세 이하 청년 중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이는 14%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영국·스페인·벨기에 등도 이스라엘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이나 무기 거래 계약을 중단했다. 영국 왕립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는 “이스라엘이 자국의 장기적인 안보와 국제적 입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가혹한 피해를 경험한 민족이 잔혹한 가해자로 탈바꿈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