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밥은 단순한 탄수화물 덩어리가 아니다. 안부를 물을 때 “밥 먹었니”, 고마움을 표할 때 “밥 한 끼 살게”라고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은 관계의 지속을 의미한다. 식당에서도 밥은 상품을 넘어 인심의 영역이었다. 메인 요리를 시키면 공깃밥은 당연히 따라왔고 “한 공기 더요”를 외쳐도 공짜였다. 공기(空器)는 ‘빈 그릇’이란 한자어다. 묵직한 놋쇠로 만들어 뚜껑을 덮어 품격을 갖춘 ‘주발(周鉢)’과 달리 가볍고 실용적인 그릇으로 우리 식탁의 주인공 역할을 해왔다.

▶지금의 스테인리스 공기는 1970년대 부족한 쌀 소비를 줄이려 혼·분식을 장려하던 시절 ‘절미(節米) 정책’으로 탄생했다. 1976년 서울시는 모든 식당에 지름 10.5㎝, 높이 6㎝의 표준 식기 사용을 강제하는 조치를 내놨다. 밥은 그릇의 8할만 채우는 게 원칙이었고, 뚜껑을 덮었을 때 밥알이 눌리면 안 됐다. 이를 어기고 고봉(高捧)으로 팔다 걸린 식당은 1개월 영업 정지를 당했다. 공무원들이 식당을 돌며 밥그릇 높이를 자로 재던 시절에도 주인들은 “야박한 인심은 천벌받는다”며 슬쩍 밥을 더 얹어 주다가 영업정지를 당하곤 했다. 법을 넘는 정(情)이 밥 인심에 담겨 있었다.

▶1976년 당시 공깃밥 한 그릇은 100원이었다. 1990년대 후반 1000원으로 자리 잡은 이래 30년 가까이 물가의 최후 방어선 역할을 해왔다. 같은 기간 자장면이나 삼겹살 값이 3~4배 올라도 공깃밥 값만은 변치 않았다. 서민들에게 밥 한 그릇은 1000원짜리 한 장이었다.

▶해외에서도 주식에 너그러운 문화는 드물지 않다. 미국 식당에서 식전 빵 바구니와 커피는 대개 무한 리필된다. 프랑스는 법으로 식전 빵과 물을 무료 제공하도록 정했다. 중국 서민 식당에선 차(茶)는 물론 밥을 무제한으로 내주는 ‘미판(米飯)’ 인심이 여전하다. 일본만은 밥값을 따로 받는다. 음식을 남기는 것을 금기시하는 ‘못타이나이(아깝다)’ 문화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산지 쌀값이 1년 새 20% 가까이 폭등하며 10개월째 고공 행진 중이다. 배달 앱에선 2000원 공깃밥이 예사가 됐고 3000원을 붙여 놓은 식당까지 등장했다. 쌀이 남아도는 나라에서 쌀값, 밥값이 폭등하는 기막힌 역설은 당국의 주먹구구식 수급 예측과 농민 단체의 압력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농업은 산업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에 있다고 하지만 쌀이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나라에서 쌀값 폭등이라니 어이가 없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