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영국 데미안 허스트(61)의 ‘상어’를 봤다. 4m 길이의 실제 상어를 포르말린 수조에 넣은 현대 미술의 걸작이다. 흥미로운 건 이 상어가 ‘원작’의 상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방부 처리 실패로 1991년의 원작 상어가 썩기 시작하자 작가는 새 상어를 구해 통째로 갈아 끼웠다. 비평가들이 “원작이 훼손됐다”고 비판하자 허스트는 대답했다. “개념은 그대로다. 중요한 건 당신이 이 거대한 상어 앞에서 무엇을 느꼈느냐다.”
▶아이디어를 중시한 개념 미술은 100년 전에도 있었다. 변기를 가져와 ‘샘’이라 이름 붙인 마르셀 뒤샹이 원조고, 작업실을 공장이라 부르며 작품을 찍어낸 앤디 워홀이 뒤를 잇는다. 예술은 유일무이한 것이라는 통념을 깨뜨린 선배들이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를 ‘수천억짜리 권력’으로 만든 첫 인물은 데미안 허스트다. 그는 수백 명의 박제사·공예가 등 조수를 두고 외주 시스템으로 작품을 양산한다. “개념이 곧 예술이다. 나는 건축가처럼 설계하고 지시할 뿐이다.”
▶허스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다. 상어 작품의 원제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다. 부패하는 소 머리에 파리가 들끓는 작품 ‘천년’에서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은 현대인에게 ‘메멘토 모리(네 죽음을 기억하라)’를 주문한다. 의학과 과학을 맹신하며 죽음을 늦추려는 세태를 복제약 대량 전시로 비판하는 ‘약국’ 시리즈도 그의 대표작이다.
▶백금 두개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은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는 약 1000억원에 팔린 작품이다. 하지만 뒤늦게 작가 자신과 갤러리 대표 등이 포함된 컨소시엄이 자전 거래를 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되자 그는 오히려 화를 냈다. “작가가 자기 작품의 가치를 믿고 직접 투자해 지분을 갖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신념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부자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의 자산 규모는 약 1조원에 달한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오늘부터 데미안 허스트 개인전이 열린다. 그의 작품 대규모 전시는 국내 처음이다. 제목은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그 유명한 ‘상어’와 ‘다이아몬드 해골’이 모두 포함됐다. 우리가 잊고 살고 있는 죽음과 자본이라는 피할 수 없는 ‘괴물’을 미술관으로 끌고 들어와 작가는 묻는다.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당신이 무엇을 믿고 싶으냐다.” 요즘 유행인 ‘탈진실’을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