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4시 대구공항 활주로에 짙은 회색의 거대한 수송기가 나타났다. 아랍에미리트(UAE) 공군 소속 C-17 ‘글로브 마스터’였다. 최대 77t까지 탑재 가능한 전략 수송기가 대구까지 날아온 것은 인근 구미 산업단지에서 생산된 요격 미사일 천궁-II를 싣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의 공습을 96% 확률로 막아냈다는 ‘한국판 패트리엇’의 위력에 UAE가 조기에 미사일을 받기 위해 ‘항공 퀵’을 요청한 것이다. UAE가 우리에게 원유 600만 배럴을 긴급 공급한 배경이 이것이란 얘기도 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탄생한 구미 산업단지는 K-전자 산업이 탄생한 곳이다. 2005년 구미는 국가 수출의 10.7%를 책임졌고,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는 전국 평균의 3배에 달해 1인당 소득 4만달러 시대를 가장 먼저 열기도 했다. 한때 삼성 휴대폰 전량이 이 곳에서 생산됐고,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중국의 저가 공세와 휴대폰 생산 기지 해외 이전으로 공동화(空洞化)의 겨울을 맞아야 했다.

▶구미에 K-방산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반세기 전 자주국방을 위해 시작한 ‘율곡 사업’ 때다. 1976년 금성정밀(현 LIG넥스원)은 텔레비전 회로를 만들던 정밀 기술을 미사일의 ‘눈(레이더)’과 ‘두뇌(유도장치)’로 진화시켰다. 여기에 레이더와 지휘통제 시스템의 강자 한화시스템이 가세하며 구미는 첨단 전장 시스템의 거점이 됐다. 최근 LIG넥스원이 2000억원을 들여 증설하고, 한화시스템이 1600억원 규모의 신규 공장을 짓고 있다.

▶K-방산 생태계는 K9 자주포와 K2 전차를 찍어내는 창원이 ‘근육’이고, 국산 전투기를 만드는 사천이 ‘날개’라면, 구미는 천궁 같은 첨단 미사일을 생산하며 전자전을 이끄는 ‘두뇌’로 삼각편대를 이루고 있다. 창원과 사천이 전통의 기계·항공을 지키고, 구미는 쇠락하던 전자 도시의 DNA를 고부가가치 전략 자산으로 업그레이드한 보기 드문 혁신 사례다.

▶철강 도시에서 바이오 메카가 된 미국의 피츠버그, 노키아의 붕괴를 딛고 6G 혁신 기지로 부활한 핀란드의 오울루, 거대 크레인을 떠나보낸 뒤 친환경 산업의 거점이 된 스웨덴 말뫼는 모두 ‘도시 변신’의 상징이다. 산업화 초기 노동집약 산업으로 가난한 나라에 젖줄이 돼줬던 구미가 세계 최첨단급 무기를 만들면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대구공항을 박차고 오른 수송기의 엔진 소리가 우리 방위산업의 미래를 들려주는 것 같다.

일러스트=김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