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저런 걸 사 먹으면 배앓이를 하거나 이질에 걸려 죽는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아이들이 입술이 파래지도록 빨아먹으며 단물을 삼키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내 고결한 집안의 가풍이 원망스러워지기까지 했다.” 박완서 자전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지금의 6070 세대를 단숨에 그들의 유년 시절로 데려간다. 설탕 대신 사카린, 우유 대신 색소를 탄 얼음과자에 불과했지만 ‘아이스케키’는 가난한 소년소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뿐만 아니다. 아이스크림 산업은 이후에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1970년 국내 최초의 콘 아이스크림인 부라보콘의 등장은 그야말로 화제였다. 영하 18°C 이하에선 부패하지 않는 특성 때문에 유통기한 표시 의무도 면제받을 만큼 관리 효율이 높았고, 냉장고 보급과 함께 집집마다 냉동실을 채우는 품목이 됐다. 여름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이스크림 통을 비우는 게 중산층의 소박한 행복이자 나름 풍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았던 ‘아이스크림 제국’이 녹고 있다고 한다. 2015년 2조원에 달했던 빙과 산업 국내 시장 규모가 지난해 1조4000억원대로 줄었다.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30%가량 동반 하락했다. 때로 보관의 이점이 탐욕과 만나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녹아내린 제품을 다시 얼려 파는 ‘재냉동 하드’는 서걱거리는 얼음 결정을 남겼고, 포장지 안에서 비틀린 형태가 됐다. 품질에 민감해진 소비자들에게 배신감을 안겼음은 물론이다.
▶유통의 패러다임이 배달로 바뀐 것도 쇠락 이유다. 동네 수퍼 냉동고에서 꺼내 먹을 때는 아무 문제 없던 아이스크림은 배달이 힘들다는 치명적 문제가 있었다. 여름철 독보적이었던 아이스크림의 자리는 이제 비슷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저가 아이스 커피와 제로 음료 등으로 다양해 졌다. 아직도 골목마다 무인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수두룩하지만 과열 경쟁과 전기료·물류비 부담에 시름이 깊다고 한다.
▶달콤한 아이스크림 한 스푼으로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쌉싸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고단함을 달래준다. 국내 커피 수입량이 20만t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동안, 아이스크림 주 소비층인 5~14세 학령인구는 10년 새 100만명 가까이 줄어버렸다. 풍요의 시대에 마주한 빙과 산업의 쇠락은, 이제 차가운 얼음 막대 하나로는 채워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달라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