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걸그룹 블랙핑크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신곡을 들려준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난 주말 현장에 가봤다. 이벤트 공간이 마련된 상설전시관까지 백여 m 줄을 섰다. 전시관 내 감상실 앞도 블랙핑크의 새 앨범 ‘데드라인(DEADLINE)’을 들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섰다. 안내 직원은 “30분쯤 대기해야 한다”고 했지만 다들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걸그룹의 신곡을 박물관에서 듣는 색다른 경험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QR코드로 접속해 듣는 ‘도슨트 블랭핑크’의 유물 해설도 새로웠다. 박물관은 ‘과거를 모아 놓은 곳’이란 선입견을 깨는 경험이었다.

▶공연계는 블랙핑크가 ‘박물관 신곡 발표’라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게 된 배경에 MZ 세대 사이에 뜨겁게 부는 ‘힙 트래디션’이 있다고 본다. ‘멋진 유행’을 뜻하는 힙(hip)에 트래디션(tradition·전통)을 합친 힙 트래디션은 전통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탄생시키거나 그렇게 만들어진 콘텐츠를 즐기는 현상을 뜻한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2020년 경복궁 근정전 앞에서 펼친 ‘아이돌(IDOL)’ 공연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의 총합이었다. 한복 입고 칼군무 추는 것도 낯선데, 판소리의 ‘지화자’ 추임새까지 버무려 넣었다. 미국 인기 TV 프로그램 지미 팰런쇼를 통해 미 전역에도 공개됐다. 그때까지 한국 전통 무대 공연은 부채춤이 전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한국 힙 트래디션에 매료됐다. 활기찬 태평소와 꽹과리 소리를 녹여 넣은 스트레이키즈의 노래 ‘소리꾼’, 조선 민화 속 호랑이 그림과 산수화 문양을 배경으로 노래한 걸 그룹 아이브의 뮤직비디오도 성공적인 힙 트래디션 사례다.

▶노래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요즘 신세대 장인들은 자개로 문양을 넣고 옻칠로 마감한 일렉트릭 기타를 제작한다. 박물관 기념품도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을 벗었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 후 ‘까치 호랑이’ 배지 등 새 아이디어 상품들이 사랑받으며 뮷즈(뮤지엄+굿즈)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오는 21일 또 한 번의 강력한 힙 트래디션 무대가 펼쳐진다. 군 복무를 마치고 완전체로 돌아온 BTS가 새 앨범을 발표하는 첫 무대로 광화문 광장을 선택했다. 경복궁 근정전을 출발해 광화문 앞 월대까지 이어지는 ‘왕의 길’을 지나 광화문광장에서 새 앨범 ‘아리랑’을 선보인다. 한국인의 한(恨)의 정서를 담아내던 민요가 힙 트래디션의 상징으로 거듭난다. 세계인과 함께 즐기는 무대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