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전인 1956년 2월 11일, 서울 명동에 한국 첫 증권거래소가 문을 열었다. 전산화는커녕 전화기조차 귀하던 시절이라 매도인과 매수인이 제시한 가격이 일치하면 거래소 직원이 나무 망치로 탁자를 두드려 계약 성립을 알렸다. 이른바 ‘격탁(擊柝)’ 매매다. 당시 상장 종목은 조흥은행, 경성방직 등 12개뿐이었다. 시가총액 기록은 없지만, 1965년 약 150억원으로 추정된다. 2600여 종목에 시총 5000조원을 돌파한 지금은 상전벽해다.

▶코스피·코스닥을 합친 한국 증시 시총이 올 들어 스위스와 독일, 대만, 프랑스를 차례로 제치고 세계 9위에 올랐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작년 말 2.1조달러였던 한국 시총은 두 달도 안 돼 3.76조달러로 79% 급증했다. AI 열풍 속에 반도체 수퍼 사이클의 돛을 올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앞장서 연일 한국 증시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

▶한국 증시 순위는 한국의 경제력 순위도 앞질렀다. 2024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2위다.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탓에 증시 순위는 늘 경제력보다 몇 계단 아래 머무는 것이 숙명처럼 여겨졌는데 이것이 뒤집어진 것이다. 지금 같은 기세라면 캐나다(4.4조달러)와 영국(4.1조달러), 사우디아라비아(3.9조달러)까지 넘어 6위까지 오를 가능성도 있다.

▶드라마틱한 반전의 일등 공신은 ‘개미’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다. 올 들어 개미는 약 20조원을 순매수한 반면,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1조원, 14조원가량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사야 오른다”는 증시의 오랜 공식이자 불문율을 개미들이 깨뜨린 것이다. 비트코인 투자로 ‘공포 면역’이 생긴 한국 개미들은 “오늘이 제일 싸다”며 거침없이 빚투(빚내서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숨 가쁜 질주에 경고등도 켜졌다. 워런 버핏이 만든 ‘버핏 지수’는 증시 시총을 GDP로 나눈 값인데, 이 지수가 100% 이하면 저평가, 200%에 가까우면 과열로 본다. 닷컴 버블 붕괴 전 미국이 150% 수준이었는데, 한국은 최근 190%를 넘었다. 하지만 미국 증시의 버핏 지수는 2021년에 200%를 넘었지만 미국 증시는 순항 중이다. 때문에 “버핏이 틀렸다”는 반론도 있다. 미래는 예측하기 힘드나 분명한 것은 한국 증시가 오랜 시간 글로벌 강자로 성장한 우리 기업들과 함께 몸집을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명동의 작은 거래소에서 출발한 한국 증시가 기업 경쟁력과 투자자 신뢰를 바탕으로 더욱 단단한 시장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