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 때 대구의 한 유생은 대구의 한자를 ‘大丘’에서 ‘大邱’로 바꾸자는 상소를 올렸다. ‘구(丘)’ 자가 공자 이름과 같아 향교에서 제사를 지낼 때마다 불경스럽고 인심을 불안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영조는 이를 일축했으나 정조 때부터 두 한자를 혼용하기 시작하더니 철종 이후에는 ‘大邱’로 굳어졌다.

▶과거 동아시아에선 국왕이나 조상·성인의 이름을 쓰지 않으려 조심했다. 이런 관습을 ‘피휘(避諱)’라고 했는데, 조상 이름을 피하는 가휘, 임금 이름을 피하는 국휘, 공자 같은 성인 이름을 피하는 성휘가 있었다. 중국 주나라 때 시작한 관습이 한반도로 넘어와 아직도 우리 일상 곳곳에 남아 있다. 조상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서양과 정반대다.

▶특히 왕 이름을 피하는 것이 문제였다. 부르는 것은 물론 쓰기만 해도 큰일 났기 때문이다. 왕이 바뀔 때마다 전국에서 이름을 바꾸는 난리통을 겪었다. 본명이 이도인 세종이 즉위하자 개성 유후 이도분은 이름을 이사분으로 고쳤다. 충청도 공주의 역인 ‘이도역’은 충청도 관찰사의 상소로 ‘이인역’으로 바뀌었다. 이런 혼란 때문에 왕이 될 가능성이 높은 왕족은 여간해서는 쓰지 않는 한자, 그것도 외자로 이름을 짓는 것이 관례였다. 영조는 40년간 ‘금’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숨겼다.

▶정부가 그동안 ‘김주애’로 알려진 김정은의 딸 이름이 ‘김주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신빙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매체들은 김주애를 ‘존경하는 자제분’ 등으로만 부르고 있다. 주애라는 이름은 2013년 방북한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김정은 부부를 만나 들었다는 이름이다. 그러나 김일성 부인 이름이 김성애인데 주애라고 지었을 리 없다는 일부 탈북자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주애, 주해 외에도 주예, 주혜라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김주애가 공식 석상에 등장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 정확한 이름이 확인 안된 상태다.

▶과거 김정은도 이름 논란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한때 김정은의 이름이 ‘김정운’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중에 원래는 ‘김정운’이었는데 개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정은 친모도 ‘고용희’냐 ‘고영희’냐 논란이 적지 않았다. 북한 매체에 거의 매일 김주애 얼굴이 나오고 국정원은 김주애가 후계 내정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름조차 공개하지 않는 북한의 폐쇄성도 문제지만 몇년째 북한 유력자 이름 하나 파악 못하는 우리 정보력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러스트=김성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