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후반 남성 A씨는 복부 비만이 살짝 있고, 과체중 범주에 속한다. 몇 년 전 고혈압, 고지혈증 진단도 받았다. 그는 아침마다 40분씩 빠르게 걷고, 헬스클럽에서 주 2회 근력 운동을 한다. 혈압과 콜레스테롤은 약물로 안정적으로 조절된다. 사람들과 어울려 산악회 활동도 열심이다. 그럼에도 그는 통계상 ‘만성질환자’다. 질병 없이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건강 수명 계산 지표에 대입하면, 수명을 깎아 먹는 감점 대상이다.
▶일본에서 신흥 장수마을로 떠오른 나가노 지역에서는 ‘핑핑 코로리(ぴんぴんころり)’라는 캠페인이 있다. 노년까지 활기차게 살고, 병상에 오래 눕지 않고, 생을 마무리하자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9988234’(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앓고 죽자)와 같다. 나가노 노인은 동네 주치의와 함께 만성질환을 약물로 조절하며, 밭일을 하고, 산책을 하며, 이웃과 어울린다. ‘나가노 장수’는 질병이 없는 기간보다 ‘질병과 함께 활기차게’ 사는 기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린다.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은 조폭처럼 몰려다닌다. 국내 고혈압 환자는 1045만여 명인데, 고지혈증이 같이 있는 경우가 40%다. 3개를 동시에 갖고 있는 환자는 232만여 명이다. 만성질환 시작 나이는 50대인데, 여러 개가 동시에 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사증후군이라는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건강수명이 8년 만에 다시 70세 아래로 떨어졌다는 소식이 나왔다. 다들 건강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왜 건강수명이 떨어졌을까. 그 원인으로 고혈압·당뇨병 등 몰려다니는 만성질환 증가가 꼽힌다. 한국인의 건강검진 수검률은 75%대로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만큼 많이 찾아낸다는 의미다. 건강수명 하락은 적신호이자 청신호인 셈이다. 만성질환 조기 발생을 줄이고 의료서비스로 제대로 관리하면 된다.
▶지금 쓰이는 ‘건강수명’ 개념은 만성질환과 함께 사는 초고령사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고혈압·당뇨병을 약으로 잘 조절하고, 운동과 사회활동을 열심히 하며 활기차게 사는 사람도 ‘만성질환 보유’라는 이유로 건강수명이 깎이는 구조다. 관리 가능한 질병 존재를 과도하게 벌점으로 매긴다. 나이 들어 병이 있다고 해도 큰 기능 장애 없이, 돌봄 없이, 자립 생활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이 시대 애국자다. 이제는 건강수명보다 보행 속도, 근육량, 인지기능을 평가해서, 활력과 총명의 수명을 늘리는 데 힘써보자. /김철중 논설위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