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복위 운동을 하다가 세조에게 처형당한 박팽년은 글자에서 획을 지우는 행위를 자기 목숨과 맞바꿨다. 세조가 “내게 보낸 문서에 스스로 신(臣)이라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나리에게 보낸 문서에 거(巨)라고 썼다”고 했다. 세조는 “실수로 잘못 썼다”고 하면 살려주려 했지만 박팽년은 거부했다. 글자에서 뺀 획 두 개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신념의 상징이었다.

▶박팽년은 글자를 일부러 잘못 썼지만, 단순 오자가 예술과 종교,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르네상스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karan)’는 성경 구절을 ‘뿔이 난다(keren)’로 착각해 모세상을 조각할 때 머리에 뿔 두 개를 넣었다. 금속활자 이전, 중세 지식은 수도원에서 필사로 전파됐는데 옮겨 적는 과정에서 잘못 적는 실수가 잦다 보니 ‘lapsus calami(펜의 실수)’라는 라틴어 관용구까지 등장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구절도 한때 의심을 샀다. ‘히브리어를 고대 그리스어로 옮길 때 밧줄(kamilos)을 낙타(kamelos)로 잘못 쓴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오늘날 ‘손가락 실수’는 펜이 아닌 키보드와 마우스로 대체됐다. ‘팻 핑거(fat finger·무딘 손가락)’라 한다. 2005년 일본 미즈호 증권 주문 실수 사건이 대표적이다. 고객이 특정 회사 주식 1주를 61만엔에 팔아 달라고 요청했는데 증권사 직원이 ‘61만주, 1엔’으로 뒤집어 입력했다. 16분 만에 중단됐지만 그사이 미즈호 증권은 4600억원이란 손실을 입었다.

▶가상 자산 거래소 빗썸에서 당첨금 단위를 ‘원’ 대신 ‘비트코인’으로 잘못 적어 60조원이 넘는 돈이 고객에게 입금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이런 사례가 적지 않다. 2019년 캐세이퍼시픽 항공은 1800만원 일등석 티켓을 70만원에 내놓는 실수로 큰 손실을 봤다. 2017년 아마존에선 한 엔지니어가 명령어 한 줄을 잘못 입력해 넷플릭스 등을 떠받치던 서버 수천 대를 통째로 삭제한 일도 있다.

▶중세 필사가들은 오자가 나오면 티티빌루스(Titivillus)라는 악마가 훼방을 놓은 탓이라고 했다. 전근대 시기 티티빌루스의 위력은 크지 않았다. 실수로 인한 피해가 번지는 속도도 느렸다. 피로와 나태, 부주의로 인한 실수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그런데 오늘날 키보드와 마우스 클릭 한 번이 빚는 피해는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대하다. AI라면 손가락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일러스트=이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