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는 저서 ‘에밀’에서 아동보호론을 폈는데 정작 자기 자식들은 “연구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고아원에 보내고 인연을 끊었다. 영국인 지미 새빌은 평생 자선단체를 운영하며 장애인과 병자, 빈민을 후원해 2011년 타계 전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봉사활동하던 병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사후에 드러났다. 역사에 이런 사례는 헤아릴 수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양면성은 갖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동 성폭력 등으로 수감돼 감옥에서 자살한 엡스타인의 이메일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러시아 여성과 관계해 성병에 걸렸다는 내용이 나왔다. 게이츠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그의 전 아내 멀린다는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게이츠를 믿지 못한다는 뉘앙스다.
▶게이츠는 기술 기업 시대를 연 위대한 창업자이기도 하지만 은퇴 후 위대한 자선가의 길도 걸었다. 게이츠 재단의 자선 활동은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소아마비·에이즈·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백신 개발과 치료에 막대한 지원을 하되, 실질적인 효과가 발생하면서 그것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게이츠 재단 돈은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아프리카 농촌 아동의 성장 부진 원인을 밝히는 인류학자를 지원하는 등 세계 인류학계의 대부이기도 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게이츠의 자선사업을 빌(Bill)과 자선(philanthropy)을 합친 빌랜스로피(Billanthropy)라고 별도 명명했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 후 게이츠에게 실망했고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심리학은 이를 ‘후광 효과의 배신’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어떤 이의 뛰어난 업적이나 선행이 그의 도덕성까지 담보한다고 믿는데 그 믿음이 깨졌다는 것이다. 빌 클린턴이나 트럼프 관련 추문도 함께 드러났지만 이목을 끌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들키지 않을 수 있다면 인간은 얼마나 쉽게 유혹에 굴복하는가’라는 오랜 도덕적 질문이 있다. 게이츠도 그런 유혹에 굴복하는 보통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게이츠는 “엡스타인과 함께한 모든 순간을 후회한다”고 사과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고 산다. 성경에 ‘의인이 불의를 저지르면 죽을 것이고, 악인이 회개하고 정의를 실천하면 살 것’이라 했다. 추문에도 불구하고 게이츠 재단이 세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구하는 위대한 봉사의 여정 만은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