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군산이 배경인 채만식의 ‘탁류’는 투기를 다룬 최초의 한국 현대소설로 평가받는다. 당시 군산은 전라도 곡창지대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항구였고, 오늘날 선물거래소처럼 쌀값이 앞으로 오를지 내릴지에 베팅하는 ‘미두장(米豆場)’이 있었다.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한탕을 노리고 미두에 손을 댔다가 집안을 거덜내고 딸을 돈 많은 호색한에게 팔아넘기듯 시집보낸다. 성공하면 막대한 부를 얻지만, 실패하면 거지가 되는 미두장을 채만식은 ‘도박장’이라고 불렀다.
▶17세기 중반 조선에 13년간 억류됐다 탈출한 네덜란드인 하멜은 조선인의 기질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착하고 남의 말을 곧이 듣기를 잘한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그들에게 우리 말을 믿게 할 수 있다.” 의사 결정을 할 때 본인의 주관보다는 주변 사람과 여론의 눈치를 많이 본다는 뜻이다.
▶한탕주의와 남의 말에 솔깃해하는 성격은 한국 자본시장의 특징인 ‘쏠림 현상(Herd Behavior)’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한다. “누가 몇 배를 벌었다더라”는 말 한마디에 위험성은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공격적 투자에 나선다. 코인 투자 열풍이 불었던 2023년 말에는 글로벌 코인 시장에서 원화 결제 비율이 달러를 제치고 여러 차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코스닥시장의 개인 투자자 거래 비율은 80%로 20~30%대인 미국·일본 등은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 세계 1위다. 코스피의 개인 거래 비율도 50%를 넘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공격적 투자 성향을 보이는 것이 한국 개미다.
▶지난 월요일 코스피가 5% 넘게 폭락하자 개인 투자자가 무려 4조6000억원가량을 순매수했다. 역대 최고 기록이다. 외국인과 기관은 공포 속에 주식을 내던지는데 개미들은 도리어 저가 매수의 기회라 여기고 역대 최대 베팅에 나선 것이다. 보통 개미들이 공포에 질리고 기관은 냉정한 법인데 이번엔 반대였다. 개미들이 버텨준 덕에 주가가 추가 폭락하지 않았고 다음 날은 역대 최대 폭 상승이란 진기록까지 세워졌다.
▶‘영끌 빚투’에 나서는 2030세대는 부모 세대처럼 세월에 따라 집 사고 저축할 가능성이 없다. 세계 많은 나라가 비슷하지만 한국 청년들은 ‘대박’을 바라는 모험 투자에 나서는 특징을 보인다. 블룸버그는 “한국 청년층에게 코인과 주식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질 것이라는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신분 상승의 사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투자에 ‘보장’은 없다. 낙담한 우리 청년들에게 이번 투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