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1973년 이집트 등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앞서 세 차례 아랍과 싸워 모두 이겼던 이스라엘은 방심하다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이 급히 수송기로 군수 지원을 하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유럽 국가가 아랍 산유국의 ‘석유 보복’을 우려해 수송기 중간 급유를 거부한 것이다. 실제 전쟁 직후 1차 오일 쇼크가 터졌다. 포르투갈만 대서양 자치령인 아조레스 제도에서 중간 급유를 허용했다. 그 섬 덕분에 이스라엘은 죽다가 살아났다.

▶미국이 리비아를 폭격할 때는 영국만 중간 급유 기지를 열어줬다. 프랑스·이탈리아 등은 아랍권의 ‘테러 보복’이 두려워 영공 통과조차 불허했다. 미 전투기는 지중해 대신 대서양의 영국 지브롤터 해협을 우회해야 했다. 1991년 미국·이라크 전쟁 때는 사우디가 적극적으로 미군의 중간 급유를 지원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목표가 사우디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과 사우디는 대표적 친미 국가다. 타국 공군기의 중간 급유 허용은 ‘같은 편에서 싸운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공군 곡예 비행팀 블랙이글스의 ‘T-50’ 기종은 한국산 초음속기다. 세계 에어쇼에 참가해 K-방위 산업을 과시하는 대표 선수다. 항속거리는 1800㎞를 조금 넘는다. T-50엔 공중 급유를 받는 기능이 없다. 먼 나라 에어쇼에 참가하려면 중간에 착륙해 기름을 넣어야 한다. 2년 전까지는 대만에서 중간 급유를 받았다. 그런데 2024년 갑자기 중국이 항의해왔다. 대만을 놓고 미·중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한국 공군기의 대만 급유가 양측 군사 협력의 단초가 될까 우려한 것이다. 민간기 주유와는 다른 차원으로 봤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 오키나와를 대안으로 생각했는데 암초가 나타났다. 일본은 T-50이 독도 상공에서 훈련한 것을 문제 삼아 오키나와 급유를 거부했다. 하지만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군사 개입 가능성’ 발언으로 중국이 대대적으로 보복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 총리는 지난 1월 방일한 이재명 대통령을 두 팔 벌려 환대했다. 그리고 우리 블랙이글스의 오키나와 중간 급유도 허용했다. 우리 공군기의 일본 영토 중간 급유는 처음이라고 한다. 블랙이글스는 오키나와를 거쳐 사우디 에어쇼에 참가한다.

▶최근 일본 여론조사에서 미국을 제외하고 ‘일본 안전에 도움이 될 국가’로 한국이 1위로 꼽혔다. 이 항목 조사에서 한국 1위는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외면할 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국제 정치는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