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안개 낀 경기도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 운전석이 빈 차가 스스로 문을 닫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미로 같은 서울 대단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스마트폰의 ASS(진짜 똑똑한 호출) 버튼을 누르면 차가 스스로 기둥 사이를 빠져나와 주인에게로 오는 광경도 낯설지 않다. 요지경의 주인공은 테슬라의 FSD(감독형 완전자율주행)다. 8개의 카메라로 주변을 살피고 AI가 판단해 운전하는 이 소프트웨어는 출근길 운전대를 맡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이들에겐 ‘해방군’이고, 이를 지켜보는 주변 운전자들에겐 경탄과 불안이 교차하는 놀라운 풍경이다.

▶앞서가던 택시가 손님을 태우려 정차하면 여유 있게 멈췄다가 차선을 바꿔 앞질러 가는 영특함을 보이다가도 거친 운전 차량이나 복잡한 도로 상황을 만나면 당황한다. 길가 쓰레기 더미를 보행자로 착각해 멈추거나 비보호 좌회전에서 급제동을 걸어 주변을 놀라게도 한다. 고속도로 버스 전용 차로에 당당히 진입하는 것을 보면 방금 입국한 ‘외국인’ 운전자 같다.

▶4050세대에게는 1980년대 인기 미드 ‘전격 Z 작전’의 실사판이다. 손목시계에 대고 “키트, 도와줘!”를 외치면 달려오던 자동차는 당시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꿈 같았다. 이제 중년이 된 그들이 스마트폰 버튼 하나로 차를 불러내고 차와 대화를 나누듯 목적지로 가는 모습은 어린 시절 공상과학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FSD가 우리 도로에서 활보하는 것은 기술과 법의 기묘한 결합이다. 한·미 FTA 규정에 따라 미국 안전 기준을 충족한 차량은 제작사당 연간 5만대까지 국내 인증을 따로 받지 않고 상륙할 수 있다. 테슬라는 이를 활용해 별도의 국내 인증 없이 미국식 자동 운행 로직을 그대로 차에 심었다. 국내 제조사가 엄격한 규제에 막힌 동안 테슬라는 FTA를 방패 삼아 규제 사각지대에서 시장을 선점했다. 특히 핸들에 주기적으로 손을 대도록 강제하는 국내법 규정마저 실내 카메라가 운전자의 시선을 실시간 감시하는 방식으로 우회하며 극복했다. 법적으로 운전자의 개입이 필수적인 ‘레벨 2’ 단계로 규정되기 때문에 사고 책임은 테슬라가 아닌 ‘앱을 누른 차량 주인’이 진다.

▶”퇴근길 정체 구간에서 FSD를 켜두면 스트레스가 확 줄고 발목도 안 아프고, 비로소 창밖 한강 풍경이 들어온다”는 찬사가 나온다. 동시에 “1000만원 가까운 추가 비용을 내고 이용하다 사고 나면 본인 책임이 말이 되냐”는 불만도 나온다. 그럼에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이 늘 것 같다.

일러스트=이철원